고린도전서 12장

2019년 4월 17일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읽기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말씀묵상

교회가 분란이 있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제 성찬에 대한 내용을 보았지만 하나됨이 교회의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되지 않았다면 교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됨은 세상의 기준과 가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이 그 하나됨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이 기준은 그 어떤 기준보다도 크고 넓고 높고 깊어서 어떠한 다른 기준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적인 생각이나 기준, 경험, 가치 등에 의해 이 하나됨이 흔들린다면 그는 이미 교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흔들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오늘 12장에 나오는 은사에 관한 내용은 신자들 간에 받은 은사를 가지고 우열을 내세우고 서로 간에 비난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대방에 대한 판단은, 나아가 정죄하는 것은 내가 소유한 은혜의 크기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일어난 것입니다.

분파가 일어난 이유부터가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나였습니다. 11장에서 언급한 여자의 너울 문제는 그가 기도와 예언을 하게 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 머리에 쓰는 것이 이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은사를 받았다고 그것을 벗고 집회 중에 나왔던 것입니다. 분명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 여자가 바지를 입고 나온 것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지금의 이해로 말한다면 예배의 형식을 깨뜨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을 주장한 것처럼 한 것입니다. 결국 무질서와 자기 주장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창조 질서를 통하여 서로가 인정할 수 있도록 설명했던 것입니다. 하나됨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은사를 얻은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함으로 교회에서 은혜와 평안으로 주님의 주님 되심이 드러나지 못하고 분란이 일게 되었고, 이 문제도 역시 근본적인 기초를 설명하며 서로를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한 성령, 같은 주, 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설명합니다. 성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그 모든 은사가 주어지고 역사되고 있음을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성찬이 하나됨을 확인하는 예식이었듯이 여러 은사들도 결국은 온 교회가 하나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지체론으로 말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이 지체는 각각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지체의 역할이 굉장이 중요한 것 같지만, 더 큰 것 같지만 결국은 다른 지체의 도움이나 역할로 인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혼자 잘남으로는 그 역할이 온전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은사가 그렇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정도의 설명은 모든 신자들이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아주 큰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은사를 소유한 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기준은 은사가 꼭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22절에 설명합니다. 약하게 보이는 지체, 별 역할이 없는 것 같고 큰 힘이 들지 않는 것 같은 부분을 말합니다. 운동선수들이 부상당하는 아주 작은 근육들이 그것입니다. 평상시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인데 문제가 생기자 생업을 흔드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도리어 요긴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특별히 보이는,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는 28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회 중에 몇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13장의 사랑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교회를 단단하게 만드는 기준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는 하나됨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3절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신령한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십니까? 나는 그의 종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입니다. 엄청난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구주 예수를 고백하는 주간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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