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장

2019년 4월 9일

고린도전서 6장



*말씀읽기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말씀묵상

6장에서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책망을 합니다. 첫 번째는 성도들의 문제를 세상에서 고발하는 경우입니다. 요즘 하도 많이 보고 듣는 사안이라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집안 일을 세상에 알게 했다는 정도의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창피한 일이라면 오히려 당해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신자됨, 교회됨을 잊은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판단은 최종적인 왕권성도로서의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 역사 속에서 현재 복음으로 말미암은 세상을 향한 판단, 심판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심으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말씀이 바로 신자들, 교회를 통하여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존재가 이러한 놀라운 일을 감당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오늘 본문에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너희들이 어찌 세상으로부터 판단을 받으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세상의 판단에 맡기는 행위와 함께 더 중요하게 언급하는 내용은 이러한 일들이 매우 작은 일이며 그것은 서로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2절). 게다가 형제가 서로 고발하는 것은 이미 불의를 행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다고 충언합니다(7절).

이러한 원리와 원칙은 인간적인 온유나 겸손으로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신자의 본질적 속성 때문입니다. 신자의 삶은 시비를 가리는 삶이 아닙니다. 재판관으로 세상에 보내진 자들이 아니라 중보적 사명을 가진 제사장으로 보냄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자리에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이 가진 자리와 위치와 가치, 기준을 모를 때 세상적 판단과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불의한 자와 방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9-10절). 그러나 너희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확인해 보라고 합니다. 신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얼마든지 신자의 가치와 기준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또 다시 음행에 대해 지적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창녀의 지체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로서 영적인 면만이 아닌 육적인 면 역시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 육체, 육신, 육적인 것도 신자들의 삶에서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할 것을 말합니다. 이 모습은 당시 유행하던 영육이원론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영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육은 마음대로 내버린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바울은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행은 결국 자신을 육체의 정욕, 자신의 만족으로 사용된 결과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이 주님이 아닌 자신이 주인이 된 모습이라는 지적입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결과도 역시 주님을 위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20절). 성령이 계신 전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는 명령은 세상 속에서 신자가 늘 간직해야 할 내용입니다. 오늘도 의의 무기로 자신을 드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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