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장

앞장에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였습니다. 이 책망은 그들이 어떤 기준과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열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로 보였지만 정작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본질은 가식과 위선 등 역겨운 것들이었음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도 그들의 누룩, 외식을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지적하십니다. 겉으로 보여진 것과 실제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속셈이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임을 말씀하시면서 두려워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왜 외식을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무서워 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닌 사람 앞에서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와 섭리를 믿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황에 의해 믿음이 좌우됩니다. 34절까지의 책망이 고스라니 나에게서도 발견되는 것들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깨지게 되면 결국 내가 내 삶을 만들어 가야 하는 자기 중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참새조차도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며 나도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된 자임을 잊게 됩니다. 결국 주님을 시인하는 것에서도 상황을 보며 사람을 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될 때 하나님은 삶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한 부자의 비유가 이런 자기만을 위한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줍니다. 소출이 풍성하여 곳간을 넓히고 가득 채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평안히 자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그날 밤에 영혼을 되찾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기를 위하여 인생을 만들어간 자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훨씬 더 풍성하지 않겠습니까? 이 삶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는 삶입니다.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세워가시는 나라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나의 삶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삶의 가치와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내가 만드는 이 세상의 목표입니까? 아니면 주님이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까? 35절부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로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책임을 다 했다고 주어지는 보상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종으로, 청지기로 있다가 주인을 맞는 것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늘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목숨까지 주시며 사랑하신 주님이십니다. 섬기며 사명을 감당함이 당연합니다. 오늘도 주신 사명 감당하는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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