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2018년 2월 17일 토요일 누가복음 15장 눅15장은 아주 유명한 장입니다. 잃었던 것을 찾은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세 비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 100마리 중 한 마리를 잃었다가 찾아 함께 즐거워하는 장면, 여자가 10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었다가 찾아 이웃을 불러 기쁨을 나누는 장면, 두 아들 중 둘째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버지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이 회복의 기쁨은 7, 10, 32절에 말하듯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 하늘에서의 기쁨이 있음을 말해 주는 비유입니다. 주제는 분명 회개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비유를 하게 된 이유입니다. 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죄인과 세리들이 가까이 왔고 이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비난을 했고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 비유를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왜 죄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말씀을 나누는가에 대해 비유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함께 하던 자들은 회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누가 봐도 죄인이고 스스로도 못난 자들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문제는 비유에서 잃었던 한 마리 양이나 한 드라크마를 주인이 찾았는데 이것이 왜 회개로 보느냐는 것입니다. 세 번째 탕자의 경우는 이해가 되지만 첫째와 둘째의 경우 양이 돌아온 것도 아니고 드라크마를 찾고 주인이 잘못을 깨달은 것도 아닙니다. 잃었던 것을 찾았는데 그것에 대해 회개한 것으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즉 주체가 직접 찾은 주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볼 때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이 바로 잃은 것을 찾은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함께 즐기며 나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는 예수님의 찾아 오심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애씀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주님의 친히 찾아가심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아들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성경의 원칙은 그게 아닙니다. 아들이 돌아온 것은 물론 회개의 내용 중에 하나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죽게 되니 살고자 수를 쓴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하죠. 당연한 모습입니다. 이것 역시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기에 받아 주시고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가 아들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었습니다. 그에게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살 바에 집에서 풍족한 품꾼같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품꾼은 고용된 일꾼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연히 착각이지요. 아직도 자신이 일하고 먹고 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돌아왔기에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해서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생각한 것은 고작 품꾼 중의 하나로 집에서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아들로서의 자리 회복입니다.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 잃었던 아들이라고 합니다. 왜 죽었고 잃었던 아들입니까?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마치 집의 주인처럼 살았던 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였고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즉 죄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아담의 본성을 가진 죄인입니다. 집 나가기 전부터 그런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를 아들로 계속 받아 주시는 은혜만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가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여전히 세리와 죄인과 마찬가지이지만 그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의 은혜가 베풀어지고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문제는 큰 아들의 자세입니다. 상식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런 자를 받아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이게 그의 큰 오해입니다. 아버지가 말하듯이 늘 나와 함께 하였고, 내 것이 다 네 것인 줄을 모른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 가운데 살고 있었는지를 모른 것입니다. 스스로 품꾼으로 살고 있던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 살아온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에 합당한 댓가를 가지고 산 줄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말합니다. 하늘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잔치입니다. 실제 잃어버린 자임을 보여 줍니다. 은혜만이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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