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2018년 2월 23일 금요일 누가복음 19장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과정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 그가 드러내야 하는 하나님 되심,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중입니다. 18:35절에서 맹인을 만나시는데 놀랍게도 그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부르짖습니다. 이 호칭은 구원자이시며 약속의 성취자이며 메시야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를 고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세리장인 삭개오를 만나심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 죄인으로 존재하는 자, 버려진 자, 소외된 자들을 직접 창조주께서 찾아 오셔서 그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어떤 인간됨이나 열심으로 만들어진 자질이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봐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깨닫게 되고 은혜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복음으로 만들어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므나 비유를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바로 잡도록 하십니다. 11절에서 비유의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좇던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메시야로서 지상의 독재자로 등극하는 것이 아닌 죄인을 대속하는 죽음으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를 통하여 당장에 하나님 나라가 나타날 줄로 생각하는 자들의 오해를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고 또한 재림하실 때까지의 과정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기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열명의 종에게 므나를 주어 장사하도록 함으로 증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물론 얼마를 남겼느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므나를 그냥 가져온 자의 모습에 초점이 있는 비유입니다. 그는 왕에 대해 세상적 기준과 가치로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 지도자처럼 착취자이기에 일해봐야 다 빼앗길 것이고 잘못하면 엄한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맡겨진 일에 충성하지 않은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앞의 두 종은 왕이 올지 안 올지에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합니다. 주인에 대한 신뢰와 충성으로 말입니다. 종으로 존재하는 자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특별함도 뛰어남도 아닌 평범한 종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왕위를 받으러 간 사이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재림을 기다리는 기간에 확인해야 할 것은 말씀에 붙잡혀 있는가, 순종하는가, 충성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사람들이 옷을 깔고 환영을 합니다. 승리의 입성인데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들어가십니다. 누구도 인정하지 못할 왕의 모습입니다. 비난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누가 충성을 하겠습니까? 인생을 걸만한 왕의 모습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예수님을 원하십니까? 내가 만들고 생각한 예수님이 존재하지는 않나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통하여 선포되고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나라입니다. 내것, 내생각, 내기준을 버리지 않으면 소유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주님의 가신 길,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심, 이것만이 신자들이 이 세상을 살며 가지고 있어야 할 기준입니다. 충성하고 의지하며 소망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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