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2장

2018년 11월 27일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24일

느헤미야 12장



*말씀읽기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2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3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4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5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6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8 레위 사람들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10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11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12 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13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14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15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16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17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18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19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20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벨이요


21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22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 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23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24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25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26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27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아스마웨ㅅ) 들에서 모여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32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요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이며

35 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 손 아삽의 육대 손 스가랴와


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7 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 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39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45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말씀묵상

12장에서는 성벽이 완공되어(6장) 그 봉헌식을 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1-26절은 1차 귀환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이유는 당연히 성전 중심의 공동체이기에 봉헌식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자들이 바로 성전봉사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27절에서 43절은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의 좌우로 돌게 했는데 43절을 보면 무리들이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고 이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보고합니다. 이들의 역사에 대한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방해와 어려움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성취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즐거움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 줍니다.

44-47절은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백성들이 드리는 헌물들, 즉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관리하도록 합니다. 그 이유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 대한 유다의 즐거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즐거움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 대한 신뢰와 기쁨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당연히 성벽이 완공되었음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의 거처가 마련됨을 즐거워하는 것만이 아닌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고 확인하게 됨으로 고백되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11장에서도 보여주었듯이 하나님 백성들의 부르심과 하나됨의 모습이며 교회 공동체가 드러내야 할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하심에 대한 기쁨이 있고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과 그로 말미암은 헌신은 자연스런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뭔가 성취되었기 때문입니까? 교회 건물이 지어지면 기쁨이 커질까요? 삶의 환경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이 형통하며 더 좋을까요? 이러한 것들로 인한 기쁨이 예루살렘을 넘어 멀리까지 들릴만한 것입니까? 당연히 이러한 기쁨으로 우리의 기쁨의 근거를 삼는 것이 진정한 것이 아님을 신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나 느헤미야의 성전 건축과 성벽 재건은 일시적인 사건이고 예표적인 사건들입니다. 이들의 기쁨은 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잘 알듯이 이들이 기쁨으로 곳간에 드렸던 헌물들이 불과 얼마 가지 않고 해이해졌음을 말리기 선지자의 외침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씀이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어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실 것임을 전합니다(말4:5-6).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된 삶과 기쁨의 근거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있어야 할 것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감사절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까? 물론 나의 환경에서 먼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들이 구원받은 자들로서 존재하기에 고백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환경을 벗어나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고백과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복있는 자들이 소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존재인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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