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8일
데살로니가 전서 2장
*말씀읽기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말씀묵상
데살로니가에서의 사역은 비록 빌립보로부터 쫓겨 나오면서 갑작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감당한 것이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있어서도 얼마나 거룩하고 흠 없게 행하였는지 너희들이 증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이러한 변명성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순수성이 있지만 아울러 이전의 습관과 종교적 배경이 그대로 있는 교회입니다. 뒤에 나오지만 이교적 성적 습관과 잘못된 종말적 신앙에 대해 지적해 주며 권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처음 바울로부터 들은 복음에 대해 확고하게 점검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들에게 전한 것이 인간이나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복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앙의 초보였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잘못된 가르침들이 침투해 있었고 바울에 대한 순수한 신뢰를 흔드는 상황이 있었던 것입니다(3절). 게다가 바울이 겪었던 고난과 능욕과 같은 내용을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경험했던 것입니다(14절).
복음은 죄인인 인간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거부반응이 있고 의심을 갖게 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 변개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간이 잘못되었고 죄인인지를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복음의 참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에게 부모와 같은 사랑으로 수고하여 이러한 복음을 전하였고 죄인들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신자들 역시 이 딜레마를 감당해야 합니다. 내 모습에 의해 복음이 변질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복음으로 말미암은 기쁨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와 평강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보여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판단하는 것은 복음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어리석음이기도 합니다. 결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견지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우리는 복음의 증인들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자랑과 면류관은 신자들이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복음으로 말미암은 증거이며 증인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 교회의 모습이며 서로의 영광이고 기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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