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후서 1장
- 주언약교회
- 2019년 9월 3일
- 3분 분량
2019년 9월 3일
데살로니가 후서 1장
*말씀읽기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말씀묵상
데살로니가 전서를 보낸 후 바울은 몇 개월 후에 다시 후서를 써서 보냅니다. 내용을 보면 여전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종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들과 위화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장은 환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신자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핍박 중에도 인내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계속 성장하며 열매 맺기를 중보하며 마칩니다.
3절을 보면 믿음이 자랐다고 말합니다. 이전의 상황보다 영적 상태가 좋아졌던 것입니다. 서로 사랑함이 풍성해지고 박해와 환난 중에서 인내와 믿음이 있었음을 자랑할 정도가 된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칭찬의 내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성장에 있어서 상황의 개선이나 나아짐이 자랑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앞서 보낸 편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드러내었던 모습이었습니다(살전1:3).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본이 된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많은 환난 가운데서 맺은 열매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모습이 후서에서도 그대로 표현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4절).
신앙 생활은 삶 속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떤 반응이며 모습입니까? 기쁨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노가 있다면 어떤 상황 때문입니까? 신자들의 반응과 모습은 믿음의 내용들이어야 합니다. 믿음, 인내, 사랑 등입니다. 그리고 고난과 핍박은 초대 교회 때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닙니다. 신자들에게 있는 일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상에서 신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그 기준과 원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자들이 사망을 대항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무 염려와 걱정이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런 모습은 신자들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맛보고 소유한 기준과 가치를 드러내야 하는 삶입니다.
5절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고 합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경험하는 일들이 심판의 표라는 것입니다. 박해와 환난이 있다면 그것을 감해주시던지 막아주시면 더 좋을텐데 그냥 놔두시고 그것을 증거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세상을 심판하시는 표로 삼으시겠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중요한 목적입니다. 신자들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은 세상을 심판하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게 됩니다. 고난이 어려움과 실망과 낙망의 원인이 아닌 소망과 기쁨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도록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하고 있습니까? 신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최종적인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습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것은 대단한 뭔가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상황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내용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오늘도 있는 곳에서 주님의 영광, 살아계심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