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장

2019년 12월 3일

디모데전서 1장



*말씀읽기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묵상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거짓 교훈에 맞서 선한 싸움을 싸우며 기독교의 본질을 드러내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1장의 내용을 보면 1-2절은 인사말, 3-11절은 거짓 교사에 대해 경고, 12-17절은 바울이 받은 주님의 은혜와 사명, 18-20절은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자로 부릅니다. 둘 사이가 얼마나 믿음으로 돈독하게 맺어진 관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진리 안에서 맺어진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성도들 간에 서로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가르치고 배우게 됨으로 만들어지는 관계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모습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3절 이후는 에베소에 머물게 한 목적을 설명합니다. 거짓 교사들에 의해 다른 교훈이 가르쳐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교훈이 무엇일까요? 세상에 기준을 둔 사상들입니다. 4절에서 예를 드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들입니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이단이라기보다는 당시 구약의 특정 인물의 신화적인 내용이나 족보를 만들어 그들의 후손이라고 주장을 하는 내용을 말합니다. 개인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어리석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인간의 잘남이나 교만은 끝이 없는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론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닌 율법 선생이 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준이 사랑으로 하느냐, 가르치려고 하느냐에 있음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신자들 간에 돌아보아야 할 중요한 기준입니다. 가르침에 사랑이 있다면 율법을 따르지 않고 복음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십자가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기준에 따라 부름을 받아 직분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지만 긍휼과 은혜로 믿게 되었고 본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임한 놀라운 은혜와 믿음과 사랑을 받은 자들의 모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신자들은 모두가 다 바울과 같은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것을 증거하는 증인들입니다. 남보다 낫고 뛰어난 우월한 자로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같은 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기적같은 은혜와 구원을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어떠한 가르침이나 선생이 되는 모습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19-20절을 보면 선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파선하며 사탄에게 내준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바울이 본이 되었던 은혜와 사랑이 이들에게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자인지가 깨달아지지 않을 때 보이는 모습입니다. 죄인을 위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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