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4장

2019년 12월 6일

디모데전서 4장



*말씀읽기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말씀묵상

바울은 디모데에게 실질적인 충고를 합니다.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말씀이 전혀 먹히지 않는 자들입니다. 양식에 화인을 맞았다고 합니다. 무감각해진 것입니다. 3절을 보면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먹지 않는 금욕주의자였던 것입니다. 영과 육을 구별하여 영은 고귀하고 육은 저급하다는 이단에 빠진 자입니다.

요즘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하기도 합니다. 세상적인 것을 무시하고 교회의 일만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직업은 세상일이고 목사만 성직이라고 하는 것은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5절에 분명하게 책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능력과 노력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는 말은 온전히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은혜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이끌리는가, 어디에 속한 자인가, 무엇을 바라보는가,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모습을 분별해야 합니다. 단순히 육체적 욕심을 버리는 것이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복음 안에서 사는 자가 거룩한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면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며 또한 양육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원천적인 교사는 성령이시고 진리입니다. 믿음도 말씀도 기도도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에 믿게 하시고 읽게 하신 분이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이 멈추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영원한 소망을 갖도록 하시고 믿음의 결단을 하도록 하시며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도록 하십니다. 이러한 역사를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령에 의해 주도되는 삶을 말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자신의 열정을 쏟지 않습니다. 분별하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른다는 말은 앞서 3장에서 경건의 비밀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복음의 내용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좇느냐는 의미입니다. 말씀 가운데 있느냐는 말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진리가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육체의 연단보다 경건에 힘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훈련은 이 세상을 살면서 당연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이며 힘이 있을 때입니다. 한정적이며 일시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를 가진 것임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경건은 영원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더 열심이 끝까지 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소망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이러한 기준을 가질 때 신자들의 삶은 늘 열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11절 이후 디모데에게 힘쓰며 살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가르치고 본이 되고, 읽고 권하는데 전념하고,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이 나타나게 하라, 이 일을 계속하라 등 열심으로 살라고 명령합니다.

신자의 삶이 무조건 열심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과 존재 의미를 확인하게 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열심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열심이 이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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