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2일
디모데후서 2장
*말씀읽기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말씀묵상
바울은 디모데에게 여러 면으로 사역자가 가져야 할 모습에 대해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받은 자로서, 증인으로서, 가르치는 자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서, 법대로 경기하는 선수처럼 감당할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 가운데서 강하기를 바라면서 부탁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사역자로서 담대함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병사로 비유하는 이유는 명령을 따르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입니다. 즉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같은 내용입니다. 신자의 직업관을 이해할 때 소명을 소홀히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것이 직업인지, 아니면 신자인지 헷갈리는 것입니다. 직업의 환경으로 부르심은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목사만을 소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로서의 삶은 이미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그들의 삶의 상황에 따라 역시 인도하셔서 부름받은 자로서 존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직업 역시 부르심을 자리로서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나를 부르신 자를 기쁘게 하는지를 늘 살펴야 할 것입니다.
담대한 모습을 위해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고난도 함께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은 나를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병사는 사생활이 없습니다.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해야 합니다. 농부는 자연에 따라 수고해야 합니다. 모두가 다 자신의 의지와 요구로 만들 수 없는 자들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서 복음에 따라 살아갈 때 일어나는 제한적인 요소들이 바로 이러한 고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인내함으로 감당하라는 것입니다(10절).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미쁘다고 합니다. 미쁘다는 말은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갑자기 이 말이 왜 나온 것입니까? 우리의 열심이 신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신실하셔서 주를 부인하는 우리를 붙잡으시겠다는 것입니다(13절). 부인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넘어지는 우리를 잡아주시고 복음의 삶을 살도록, 고난을 견디며 인내하도록 도우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말씀을 좇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서 힘쓰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보며 아직 나는 멀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전히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인해 자신을 살피며 부족을 고백하는 것이지만 이미 신자들은 구원받아 일꾼이 되어 주의 뜻을 감당하는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16절 이후는 복음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들은 당연히 망령되고 헛된 말을 좇고 불경건으로 나아가고 진리에 관해 그릇됩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모두가 죄인들인데 그것을 듣고 나아오는 자와 점점 멀어지는 자들이 구별됩니다. 19절을 보면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고 합니다. 그들을 복음 안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에 순종하는지, 아니면 거절하는지 자신을 잘 보십시오.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은 준비되어 쓰임을 받고 22절 이후의 모습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복음을 좇아 힘쓰시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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