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장

2019년 12월 14일

디모데후서 4장



*말씀읽기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말씀묵상

3장에 이어서 바울은 유언적인 조언을 디모데에게 하고 있습니다. 종말적인 자세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부탁하고 있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이 부탁이 얼마나 긴급하고 강력한 것인지를 느끼게 합니다. 이 편지를 쓸 때에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6절을 보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제는 제사를 드릴 때 마지막으로 부어지는 제주를 의미합니다. 희생제사의 마지막 의식처럼 자신이 희생적 죽음을 앞두고 있음을 깨닫고 결연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의 명령이 기회가 되든지 아니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리도 강조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 전파는 신자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임을 확인할수록 더욱 감당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단순한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생각하거나 비교하여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절대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신자들이 말씀을 선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선포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으며 외면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람들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들의 대응, 친분, 관계 등으로 인해 머뭇거리게 됩니다. 3절 이후의 내용이 바로 이러한 속성들을 지적합니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자들조차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허탄한 이야기는 딤전4:7에서도 나왔듯이 세상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인본주의 이기주의적인 말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선 말씀을 선포하는 자로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유가 세상이 기준이지는 않은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깊이 살펴야 할 것입니다. 말씀 선포는 개인적인 목적이나 만족을 위함이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뜻과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깨닫고 믿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이끌며 목적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후반부는 디모데에게 자신을 떠난 자들을 언급하면서 빨리 오라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처량한 신세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평생을 바쳤지만 여전히 감옥이며 사람들이 떠나간 것입니다. 누가 바울을 본받고 그의 말을 듣겠습니까?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 바울과 함께 할 것인가, 떠날 것인가? 예수님을 좇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아무도 십자가를 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주께서 편이 되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17절). 세상이 미워하고 떠나지만 주님만이 힘을 주시고 사명이 헛되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과 세상이 주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습니까? 무엇에 목적을 두었습니까? 세상 속에서 말씀을 좇다가 우왕좌왕하지 않는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십자가를 창피해하지는 않는지, 다시 한 번 깊이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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