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로마서 2장
[말씀읽기]
1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심판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2 "b)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b.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를 넣어서 읽을 수 있음)
3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
4 더구나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사람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관용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기까지 한다니, 될 말입니까 ?
5 그런 사람은 완고한 마음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를 터뜨려 의로운 심판을 하실 그 날을 앞에 두고, 자기가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6 하나님께서는 c)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c. 시62:12,잠24:12)
7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8 이기심에 얽매여서 진리를 거스리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을 내리실 것입니다.
9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요,
10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망할 것이요, 율법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4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실천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15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16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17 <유대 사람과 율법> 그런데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면서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그분의 뜻을 알며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9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스스로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20 율법에서 모든 지식과 진리의 근본을 터득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으로 확신합니다.
21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남을 가르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도 왜 도둑질을 합니까 ?
22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왜 간음을 합니까 ? 우상을 미워하면서도 왜 신전의 물건을 훔칩니까 ?
23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왜 율법을 어겨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
24 성경에 기록된 바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한 것과 같습니다.
25 율법을 지키면 할례를 받는 것이 유익하지만, 율법을 어기면 받은 할례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26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면, 할례를 받지 않아도 할례를 받은 것으로 여김받지 않겠습니까 ?
27 그리고 본래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은, 율법의 조문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은 사람이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정죄할 것입니다.
28 겉 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에다가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29 오히려 속이 유대 사람인 사람이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말씀묵상]
1장에서 복음을 설명하고 의인은 복음으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산다는 사실을 선포한 후에 그 반대의 삶을 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나열했습니다. 이 두 부류의 구분은 명확한 것입니다. 복음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의로 사는 자이냐, 아니면 욕심과 자랑으로 뒤덮인 자신의 의로 살아가는 자이냐의 구분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좀 다른 특별한 부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인데 그것으로 자기의를 세우며 사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전반적인 의미로 볼 때 죄인의 본성을 가진 모든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우리의 모습이 복음을 가진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담적 본성으로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적나라한 표현이 나오는데 신자들의 삶에서 늘 발견되는 내용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도전을 받아야 하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할 것입니다. 1장에서 복음으로 사는 자와 자기 욕심으로 사는 자를 구분했지만 사실 신자들은 복음과 욕심을 동시에 가지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에서도 바울은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안다고 표현합니다. 4절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며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는 잘 아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결론을 맺습니다. 모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자들에게 질책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인간에게는 어떠한 기준도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으로 무조건 자기를 위해 사용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뜻, 방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런 죄인을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인간 스스로 만든 것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기 때문에 12절 말씀대로 율법이 없어도 망하고 있어도 심판을 받는 절망 속에 있는 것이 현실인데 혹간 사람들 중에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는 자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율법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이들도 양심이 기준이 되어 스스로를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율법에 맞는 모습을 보였다 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의 양심에 판단으로 인하여 고발하고 변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도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이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16절).
결국 누구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에게까지 도전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17절 이후에 말하는 내용이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 얼마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힘썼는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의지, 마음을 담은 율법으로 자신의 의를 챙기고 자기정당화를 하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율법주의의 최고봉인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회칠한 무덤같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시체가 있듯이 더러움과 악독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드러나는 내용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은혜로 구원을 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여전히 남아 있는 아담적 본성, 자기 만들기, 나 중심적 삶을 깨뜨리며 십자가의 구속 앞에 엎드리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어진 현실 속에서 주님의 주인되심을 드러내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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