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1일
[말씀읽기]
1 <성령은 생명을 주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a) 성령의 법이 여러분 각자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a. 그) 영)
3 육신이 연약하므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다 죄를 정하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11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시면, b)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b.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리스도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
12 그러므로 c)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c. 그) 형제들)
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a)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a.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의 그리스어 음역)
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18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갈망하다>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하였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21 그것은 곧 피조물도 사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23 그뿐만 아리나,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24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
25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27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b)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b. 그) 분께서는)
28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c) 대가족 안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c. 그)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30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31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역경보다도 강하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
32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 환난입니까 ?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
36 성경에 기록된 바 d)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한 것과 같습니다. (d. 시44:22)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일도, 장래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말씀묵상]
신자의 본질적인 존재가 어떠한 것인지를 8장에서 설명합니다. 율법적 삶을 사는 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정죄함이 없는 진짜 그리스도인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적인 삶을 사는 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적으로 완전무결한 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그러한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3절에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육신을 따르지 않는, 육신의 일과 생각을 하지 않는, 육신이 기준이 되지 않는 모습을 말합니다. 내가 기준이었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만들어가던 삶에서 성령께서 나를 만들어가는 삶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권의 주체가 바뀐 것입니다. 애굽에서 살던 삶에서 광야에서 사는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애굽은 바로의 지배 하에 자신의 삶을 사는 삶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에 의해 만나라는 것으로만 사는 삶입니다. 이 삶이 육신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은 것으로 설명합니다(15절).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어 그의 영광 역시 함께 받게 되었는데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17절). 그런데 이 고난은 단순한 어려움이나 아픔이 아니라 자녀로 상속자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은 힘들다고 없게 하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하여 결국 소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없게 해달라거나 피하려고 하는 것은 소망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26절부터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감당하도록 하신다는 말입니다. 피하고 없게 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28절). 성령께서 도우시면 모든 것이 선을 이루지 않을까요? 이 구절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합력한다는 말은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들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못한 일, 잘한 일, 만족, 부족, 실패, 성공, 이 모든 것들이 선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함께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삶 속에서는 나의 원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성취됩니다. 이 결과가 30절입니다.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기에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사랑을 해할 수 없고 방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포기하거나 세상을 목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의해 좌우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해 우릴 지키시는 분이 아니라 뭐든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37절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나의 성공이 목적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말씀을 의지한다는 말은 역전될 것을 믿는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주체는 ‘나’가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나의 출세, 성공에 목적이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 선을 이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고난받으면서도 기뻐한 이유는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행5:41, 고후12:10).
35절과 38-39절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구절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믿는다는 말은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반드시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이시기 위해 동원되는 내용들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의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출세, 성공, 건강, 장수, 승리 등. 게다가 남들이 허덕일 때 살아남은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살아남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주님만이 주님으로 계셨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야곱의 12 아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애굽의 노예가 됨으로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태생 자체가 주권이 없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질입니다. 주권과 권리와 능력이 다 빼앗긴 자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택하시고 이끄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역시 이 사랑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기쁨과 담대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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