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21일
베드로후서 2장
*말씀읽기
[벧후 2]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말씀묵상
2장에서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를 합니다. 이단을 불러들여 주를 부인하며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심판해 오셨는지를 구약의 사건들을 예로 들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요한 특징은 사신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셨다는 말은 구속하셨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하나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부인한다는 말은 현세에 대한 목적과 만족을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비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하며 믿음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이단들이 엉터리 복음으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성도들을 흔들었습니다. 거짓 선생들의 특징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고 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그들의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평안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탐심으로 한 것이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이 아닌 지어낸 말을 전하며 이득을 삼았던 것입니다(3절).
늘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복음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십자가는 죄용서와 구원이 선포되는 표시이지만 죄로 말미암은 죽음이라는 심판이 있는 곳입니다. 이 말은 죽어 마땅한 자들, 죽어 있던 자들이 십자가의 대속적인 심판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왜 은혜인가요? 살 수 없는 자, 살면 안 되는 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 그의 사랑과 약속을 깨달았다면 내 기준과 만족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십자가 기준으로, 위엣 것을 바라보며 영원한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거짓 선생이 세상의 것으로 유혹할 때 속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종말이 없을 것처럼 달려 갑니다. 종말이라는 말은 하더라도 모두가 종말이 없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세상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심판하셨다는 사실을 노아 홍수, 소돔과 고모라를 예로 들며 증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도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멸망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구원해 내신다는 사실도 증명합니다. 물론 그 과정과 시간이 불법한 자들, 무법한 자들, 불의한 자들, 이성없는 짐승같은 자들로 인하여 그리 녹록치는 않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세상을 살며 신자들은 분명한 기준과 목표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섬기거나 세상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어린 양 예수를 좇는 자들입니다. 10절 이후를 보면 세상이 어떤 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더러운 정욕, 멸시, 당돌, 자긍, 비방, 속임수 등입니다. 한마디로 잡혀 죽기 위해 난 이성 없는 짐승 같다고 합니다. 불신자들이 그렇게 삽니다.
이런 세상에서 신자들의 삶은 십자가를 기준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노아의 때와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가 나온 이유는 어느 때나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방주를 만들 때 누가 알고 믿었겠습니까? 홍수를 알지 못하던 때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부활이나 재림을 알지 못하는 때입니다. 아무도 기다리지도, 겁을 내지도, 깨어있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어떤가요? 롯의 사위가 보인 모습입니다. 구원의 소식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복음이 무시되고 있고 기독교가 천대받는 세상입니다. 어느 때나 늘 있던 모습입니다.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더라도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위해 캄캄한 어둠이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17절).
우리 자신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심비에 새겨져 있습니까? 세상의 소리에 기울어지지는 않았습니까? 고난이 무서워 발람의 길을 가지는 않습니까?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주님의 보혈,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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