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3일
사도행전 12장
*말씀읽기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말씀묵상
오늘 본문은 세 가지 큰 사건이 나옵니다. 야고보 사도의 죽음, 베드로 사도의 투옥과 기적적 방면, 그리고 헤롯의 비참한 죽음입니다. 먼저 사도 야고보의 죽음은 너무 어이없어 보입니다.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회를 해하려는 상황에서 죽게 됩니다.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에 교회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흥왕하여 간다는 기독교의 능력이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러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힘에는 힘, 능력에는 능력, 이러한 같은 식으로 대항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아니 자주 신자들의 자리는 세상에서 핍박받는 곳에 처하게 됩니다. 그들을 이기며 물리치는 것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능력이 이들에게 발휘되지 않습니다. 앞장에서 천하에 흉년이 들리라는 예언을 하게 되는데(11:28) 이런 예언을 교회에서 했으니 교회는 제외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흉년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너무 어려워져서 안디옥 교회에서 부조를 모아 바나바와 사울을 통하여 구제헌금을 보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비아냥거리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을 구원한다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막15:31)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볼 때 기독교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와 전혀 다른 은혜와 사랑과 희생과 긍휼의 십자가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고 핍박이 있고 고난이 덮쳐도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감당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걸 뒤집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해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위협이나 협박을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까지 잡혀 감옥에 들어갑니다. 곧 죽을 운명인데 주의 사자가 그를 이끌어 나오게 됩니다. 온 교회가 기도하여 응답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교회가 해야 할 모습이고 이것밖에 할 것이 없음도 보여 줍니다. 작당하여 권모술수로 세상과 결탁하는 경우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베드로가 풀려나지만 그것으로 인해 세상을 뒤집고 주의 사자를 앞세워 정의의 이름으로 물리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대서특필하여 그것으로 기독교의 능력과 자리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살아났는데 이것에 대해 차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사건이 능력과 자랑이 아니라면 야고보의 죽음도 수치나 실망이 아닌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을 이루어가시는 과정일 뿐입니다. 개인적인 신앙의 차이도 아니며 하나님의 능력이 달라서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0절 이후를 보면 헤롯이 세상의 영광을 맛보다가 주의 사자가 침으로 죽게 됩니다. 헤롯의 죽음이 뭔가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걸 등에 업고 기독교가 일어나거나 주인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갔다고 서술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만 드러났다는 말입니다. 지금 사도행전이 말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누가 죽어도 기적같이 살아나도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만 드러나고 복음은 전파되어 갔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역시 이러한 일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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