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
사도행전 24장
*말씀읽기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
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8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9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0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1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2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3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4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5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6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7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8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19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0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1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2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23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4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5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6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말씀묵상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동맹한 공모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벨릭스 총독 앞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을 공격하는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특별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고발하였고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죄인의 상황으로 이끌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공격하는 내용의 요점은 바울이 자신들의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것이고 바울의 변호의 요점은 이들의 체계를 무너뜨린 적이 없으며 단지 이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도를 따르며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두 진영의 주장이 서로 대립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겉모습을, 바울은 내적 신앙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혀 부딪히지 않는 내용인데 왜 유대인들이 이렇게 바울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것입니까?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잘못됨을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전통에 의해,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것들에 의해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지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특권과 가치가 무시되고 그들이 애쓰며 지키던 성전 중심의 삶이 허무한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생각하며 바로 잡기 보다는 이러한 이단 사설을 퍼뜨리는 바울을 죽이기로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은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체계를 흔들고 특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인식된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이 피하지 않고 불합리와 고난과 불법함을 그대로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때도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항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자신은 세상의 기준과 상황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에 기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신자들은 세상이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는 그것으로 대항하거나 싸우며 자기 자리를 확보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24절 이후를 보면 벨릭스 총독이 복음을 듣고자 바울을 부르는데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 전하자 두려워하여 더 듣기를 보류합니다. 벨릭스는 노예에서 출세한 자라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의 설교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바울이 세상적 수단을 쓸 만한 상황이아닐까요? 실제로 벨릭스가 돈을 받을까 바라며 자주 불렀기 때문입니다(26절).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이 자기 존재하는 이유이며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답답해도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상황을 모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의 세상에서의 분명한 자리와 현실을 보여 줍니다. 바울이 부활신앙을 틈만 나면 외치는 이유입니다. 부활이 신자들에게 현재의 삶을 이기며 살도록 하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세상이 기준이 된 자들 속에서 복음과 그리스도와 영원이 기준이 된 삶을 사는 자들이 신자들입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확인하며 기쁨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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