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8장

2020년 12월 8일

사무엘상 18장



[말씀읽기]

1 다윗이 사울과 이야기를 끝냈다. 그 뒤에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2 사울은 그 날로 다윗을 자기와 함께 머무르게 하고,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3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4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

5 다윗은, 사울이 어떤 임무를 주어서 보내든지, 맡은 일을 잘 해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온 백성은 물론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그 일을 마땅하게 여겼다.


6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고 군인들과 함께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울 왕을 환영하였다.

7 이 때에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8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 !" 하고 투덜거렸다.

9 그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10 바로 그 다음날,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덮치자, 사울은 궁궐에서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 다윗은 여느날과 같이 수금을 탔다. 그 때에 사울은 창을 가지고 있었는데,


11 그가 갑자기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하면서,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 번이나 몸을 피하였다.

12 주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안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졌다.

13 그리하여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여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였다. 다윗은 부대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14 주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그는 항상 이겼다.

15 다윗이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두니, 사울은 그것을 보고, 다윗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16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이 늘 앞장 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좋아하였다.

17 <다윗이 사울의 사위가 되다> 사울은 (자기의 손으로 다윗을 직접 죽이지 않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마음먹고,)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가 데리고 있는 나의 맏딸 메랍을 너의 아내로 줄 터이니, 너는 먼저 주께서 앞장 서서 싸우시는 주의 싸움을 싸워서 네가 정말 용사인 것을 나에게 보여라."

18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제가 누구이며, 제 혈통이나 제 아버지 집안이 이스라엘에게서 무엇이기에, 제가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 하고 사양하였다.

19 그런데 사울은 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기로 하고서도, 정작 때가 되자, 사울은 그의 딸을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과 결혼시키고 말았다.

20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였다. 누군가가 이것을 사울에게 알리니, 사울은 잘 된일이라고 여기고,


21 그 딸을 다윗에게 주어서, 그 딸이 다윗에게 올무가 되게 하여, 그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해야 하겠다고 혼자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에게, 다시 그를 사위로 삼겠다고 말하였다.

22 사울이 신하들에게 지시하였다. "너희는 다윗에게 내가 다윗을 좋아한다고 말하여라. 이처럼 우리 모두가 다윗을 좋아하니, 임금의 사위가 되라고 슬쩍 말하여라."

23 사울의 신하들이 부탁받은 대로 그런 말을 다윗의 귀에 들어가게 하니,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있겠소 ?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로 보입니까 ?" 하고 말하였다.

24 사울의 신하들은 다윗이 한 말을 사울에게 전하였다.

25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너희는 다윗에게 내가 결혼 선물로 아무것도 바리지 않으며, 다만 나의 원수 블레셋 사람의 양피 백 개를 가져와서 나의 원수를 갚아 주는 것만을 바라더라고 하여라." 하고 시켰다. (사울은 이렇게 하여,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할 셈이었다.)


26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그대로 다윗에게 전하였다.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a) 결혼 날짜를 잡기도 전에, (a. 또는 시효가 지나가기 전에)

27 왕의 사위가 되려고, 자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쳐죽이고 그들의 양피를 가져다가 요구한 수대로 왕에게 바쳤다. 사울은 자기의 딸 미갈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28 사울은 주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 딸 미갈마저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29 다윗을 더욱더 두려워하게 되어, 마침내 다윗과 평생 원수가 되었다.

30 그 무렵에, 블레셋 지휘관들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싸움을 건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장군들보다 더 큰 전과를 올렸기 때문에, 다윗은 아주 큰 명성을 얻었다.


[말씀묵상]

골리앗을 물리친 후 다윗의 상황은 승승장구, 탄탄대로가 아닌 사울의 살해 위협 속에 살게 됩니다. 백성들이 즐거워하며 그를 칭송하고, 요나단이 생명같이 사랑한 결과는 사울 왕으로부터 쫓김을 당하는 신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편에서 본다면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받아 왕으로 세워졌는데 상황은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는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쫓기는 상황으로 펼쳐지지만 사울 왕과 다윗의 모습은 정반대임을 본문이 보여 줍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령에 사로잡히고 다윗은 수금을 타며 악령을 쫓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났지만 다윗과 함께 하십니다. 이로 인해 사울을 두려움 속에 있게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여러 계략을 세우지만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더욱 두려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울이 행하는 모습에 대해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너그럽게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아들같은 다윗을 인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와 사람들의 시각에 사로잡혀서 이러한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는 가장 큰 힘과 무기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두려움에 살게 됩니다. 대적이 많고 고난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망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아가 무너지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무너뜨릴까봐 무서운 것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서 분명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 무엇을 목적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러한 질문의 중심에 내가 있기에 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겨야 하고 나를 두렵게 하는 존재를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존재 의미는 이들을 없애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억압하고 방해하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나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방해받거나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계속되며 그것으로 신자들은 증인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너무 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주인이시며 만물의 주권자이시니 그에 걸맞는 모든 것이 주어질 것인 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시지, 그에게 세상에서 큰 소리칠만한 꿈같은 삶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단지 다윗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지혜로움입니다(14절).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주어진 대로 백성들 앞에 출입할 뿐입니다.

성도의 최고의 자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임을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삶의 기준이며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는 늘 함께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으로 만족하며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요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불신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동행하심에 대한 신뢰입니다. 늘 함께 있음에 대한 고백과 함께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고백이 오늘도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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