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장

2021년 1월 13일

사무엘하 11장



[말씀읽기]

1 <다윗과 밧세바> 그 다은 해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5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6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는,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서, 헷 사람 우리아를 다윗에게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로 왔다. 다윗은 요압의 안부와 군인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물었다.

8 그런 다음에, 다윗은 우리아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우리아가 어전에서 물러가니, 왕은 먹을 것을 함께 딸려서 보냈다.

9 그러나 우리아는 자기 상전의 종들과 함께 대궐 문간에 누워서 자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0 다윗은, 우리아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원정 길에서 돌아왔는데, 왜 집으로 내려가지 않은지를 우리아에게 물었다.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겠다." 그리하여 우리아는 그 날 밤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그 다음 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다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다. 그러나 저녁때에, 그는 여전히 왕의 신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편에 보냈다.

15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16 요압은 적의 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적의 저항 세력이 가장 강한 곳에 우리아를 배치하였다.

17 그 성의 사람들이 나가서 요압의 군인들과 싸우는 동안에, 다윗의 부하들 쪽에서 군인 몇 사람이 쓰러져서 죽었고, 그 때에 헷 사람 우리아도 전사하였다.

18 요압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전쟁의 상황을 모두 전하였다.

19 요압은 전령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네가 이번 전쟁의 상황을 모두 임금님께 말씀드리고 났을 때에,

20 임금님이 화를 내시며 네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왜 그토록 성에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 적의 성벽 위에서 적병들이 활을 쏠 줄도 몰랐단 말이냐 ?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누가 쳐서 죽였느냐 ? 어떤 여자가 성벽 위에서 그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을 던져서,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않았느냐 ? 그런 것을 알면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성벽에 가까이 갔느냐 ? 하시면, 너는 임금님의 부하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22 전령이 떠나, 다윗에게 이르러서, 요압이 심부름을 보내면서 일러준 말을 모두 전하였다.

23 전령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적은 우리보다 강하였습니다. 적이 우리와 싸우려고 평지로 나왔으므로, 우리는 적들을 성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성문 가까이까지 적들을 밀어붙였습니다.

24 그 때에 성벽 위에 있는 적들이 임금님의 부하들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부하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죽었고, 임금님의 부하인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

25 그러자 다윗이 전령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압에게, 칼은 이 편도 죽이고 저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그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26 우리아의 아내는,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의 남편을 생각하여 슬피 울었다.

27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니,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왔다. 그 여인은 이렇게 하여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여났다. 그러나 주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


[말씀묵상]

결국 터질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충성스런 신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악한 방법으로 빼앗은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는 사건이라 한 나라 왕으로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그 모습과 자리를 훈련하며 배워오고 있었던 터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다윗이 어떠한 과정이 있었고 어떠한 방법으로 빼앗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는 악한 왕이라는 사실만 보여 줄 뿐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야 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렸을 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그의 삶은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것이 마치 왕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습니다. 게다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기치로 진정한 승리를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그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에 일어나는 그의 방랑과 고난의 시간은 사울의 살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드러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고 주변의 나라들에게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보고는 그의 능력을 드러냄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내외적으로 보여 준 것이 9-10장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영광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윗의 자리와 위치가 어떠한지를 세계 만방에 알릴 순간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범죄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의 기세를 꺾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본질이 어떤 자인지 드러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이스라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백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윗은 거대한 제국의 왕이라는 세상적 기준과 가치를 가진 자가 되었음을 드러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사람들이 가끔 비난하는 내용 중에 신자들의 범죄입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죄질이 나쁘다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그러면 안 된다는 식입니다. 불신자의 범죄는 그러려니 하는데 유독 신자들, 직분자들, 목사들의 죄는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모습입니다. 때로 죄값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죄는 사회적 비난과는 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죄를 통하여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깨닫게 됩니다. 당연히 이러한 고백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들이 자신의 죄를 통하여 자신의 무가치함과 불가능함을 발견하며 십자가를 의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12장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폭로당하고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시51편). 내일 보겠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자임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로부터 추앙받던 다윗이 아니라 세상의 미물보다도 작고 부패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악을 통해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론 그러니까 더 죄를 범하여도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바닥상태를 고백하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 아픈 것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임이 폭로됨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과 기준이 실현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라는 존재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느껴지고 소유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산상수훈의 8복이 그런 자들임을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올해도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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