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장
- 주언약교회
- 2022년 8월 15일
- 5분 분량
[말씀읽기]
1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다> 이런 일이 일어난 뒤에, 다윗이 주께 "제가 유다에 있는 성읍으로 올라가도 됩니까 ?" 하고 여쭈었다. 주께서 그에게 올라가라고 하셨다. 다윗이 다시 여쭈었다. "어느 성읍으로 올라가야 합니까 ?" 주께서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알려 주셨다.
2 그리하여 다윗이 그 곳으로 올라갔고,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함께 올라갔다.
3 다윗은 자기의 부하들과 그들의 온 가족을 데리고 함께 올라가서, 헤브론의 여러 성읍에서 살도록 하였다.
4 유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곳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유다 사람의 왕으로 삼았다. 사울을 장사지낸 사람들이 길르앗의 야베스 사람들이라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지니,
5 다윗이 길르앗의 야베스 주민에게 사절을 보내어서, 그들에게 이와 같이 전하였다. "야베스 주민 여러분이 사울 왕의 장례를 잘 치러서, 왕에게 의리를 지켰으니, 주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6 여러분이 그러한 일을 하였으니, 이제는 주께서 여러분을 친절과 성실로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도 여러분을 잘 대접하겠습니다.
7 비록 여러분의 왕 사울 임금님은 세상을 떠나셨으나, 유다 사람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삼았으니, 여러분은 이제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기를 바랍니다."
8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사령관인데, 그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다.
9 거기에서 그는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다.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에 마흔 살이었다. 그는 두 해 동안 다스렸다.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랐는데,
11 다윗이 유다 족속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다스린 기간은 일곱 해 여섯 달이다.
12 <이스라엘과 유다의 전쟁> 어느 날,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마하나임을 떠나 기브온으로 갔다.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다윗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서서, 두 장군이 기브온 연못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붙게 되었다. 한 편은 연못의 이쪽에, 또 한 편은 연못의 저쪽에 진을 쳤다.
14 그 때에,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젊은이들을 내세워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합시다." 요압도 그렇게 하자고 찬성하였다.
15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일정한 수대로 나아갔는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쪽에서는 베냐민 사람 열두 명이 나왔고,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서도 열두 명이 나왔다.
16 그들은 서로 상대편 사람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똑같이 상대편 사람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서, 모두 함께 쓰러져 죽었다. 그래서 기브온에 있는 그 곳을 헬갓핫수림, 곧 칼의 벌판이라고 부른다.
17 그 날에, 싸움은 가장 치열하게 번져 나갔고, 결국 아브넬이 거느린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의 군대에게 졌다.
18 마침 그 곳에는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은 들에 사는 노루처럼 달음박질을 잘 하였다.
19 아사헬이 아브넬을 뒤쫓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빗나가지 아니하고, 아브넬만을 바싹 뒤쫓았다.
20 아브넬이 뒤를 돌아보면서, "아사헬, 바로 너였구나 !" 하고 말하니, 아사헬이 "그래, 바로 나다 !"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아브넬이 그를 타일렀다. "나를 그만 뒤쫓고, 돌아서서 가거라. 여기 나의 좌우에 있는 젊은이나 한 사람 붙잡아서, 그의 군복을 벗겨 가지고 가거라." 그러나 아사헬은 그가 뒤쫓던 길에서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다.
22 아브넬이 다시 한 번 아사헬을 타일렀다. "너는 나를 그만 뒤쫓고, 물러가거라. 내가 너를 쳐죽여서, 너를 땅바닥에 쓰러뜨려야 할 까닭이 없지 않으냐 ? 내가 너를 죽이고, 어떻게 너의 형 요압을 보겠느냐 ?"
23 그런데도 아사헬이 물러가기를 거절하니, 아브넬이 창 끝으로 아사헬의 배를 찔렀다. 창이 그의 등을 뚫고 나왔으며,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아사헬을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쓰러진 곳에 이르러서, 모두 멈추어 섰다.
24 그러나 나머지 두 형제 요압과 아비새는 아브넬을 계속 뒤쫓았다. 그들이 기브온 광야로 들어가는 길 가의 기아 건너쪽에 있는 암마 언덕에 이르렀을 때에, 날이 저물었다.
25 그 때에 아브넬을 따르는 베냐민 족속의 군인들은, 언덕에서 아브넬을 호위하고 버티었다.
26 그 때에 아브넬이 요압에게 휴전을 제의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느냐 ? 이렇게 싸우다가는, 마침내 우리 둘 다 비참하게 망하고 말지 않겠느냐 ? 우리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네가 나의 부하들에게 동족을 추격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명령하겠느냐 ?"
27 요압이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네가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으면, 내 군대가 내일 아침까지 추격을 해서, 너를 잡았을 것이다."
28 요압이 나팔을 부니, 모든 군인이 멈추어 섰다. 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않고, 더 이상 그들과 싸우지 않았다.
29 아브넬과 그의 부하들이 그 날, 밤이 새도록 아라바를 지나갔다.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고, 비드론 온 땅을 거쳐서 마하나임에 이르렀다.
30 요압도 아브넬을 뒤쫓던 길에서 돌아와서, 군인들을 점호하여 보니, 다윗의 부하 가운데서 열아홉 명이 없고, 아사헬도 없었다.
31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아브넬의 부하 가운데서 베냐민과 아브넬 군인을 삼백육십 명이나 쳐죽였다.
32 요압과 그 부하들은 아사헬의 주검을 메어다가, 그의 아버지가 묻혀 있는 베들레헴의 무덤에 장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밤이 새도록 걸어서 헤브론에 이르렀을 때에, 아침 해가 떠올랐다.
[말씀묵상]
우여 곡절 끝에 다윗이 결국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음으로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거취를 묻습니다. 매우 중요한 모습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묻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왕국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다윗은 그 한 발도 하나님의 뜻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의 원칙이며 바른 모습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것을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삼상 22장에서 아둘람 동굴로 피해 있을 때 부모와 함께 모압으로 피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선지자 갓이 나타나 유다 땅으로 돌아 갈 것을 전했었습니다. 그리고 27장에서는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갔다가 조국인 이스라엘을 공격할 뻔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던 다윗은 하나님께 유다로 올라가리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임의로 결정했던 결과들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뜻을 좇는 것이 옳은 것임을 배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결정하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도하며 묻는 것은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일하심과 뜻으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삶의 근거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그의 가족과 추종자들과 함께 헤브론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 사람들이 나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의 왕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공식적인 왕으로서 특별한 선정을 펼칩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울을 장사해 준 것에 대한 보상을 약속해 주는데 하나님께서 은혜와 진리를 베푸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6절). 당연히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단순한 관대함이나 인자함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이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어 그의 보호를 받게 되는 은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식언치 않으시고 그대로 지키신다는 의미의 진실을 말합니다. 다윗을 통하여 이루어질 나라가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임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포가 왜 의미가 있느냐면 사울을 선대한 자에게 베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원수를 선대했다고 은혜와 진리로 베푸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선대한 아히멜렉 제사장 가문을 몰살 시켰습니다(삼상22장). 아마도 일반적인 세상의 모습일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모습이지 않나요?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원수를 선대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대한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사는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사건은 좀 어이가 없는 내용 같습니다. 다윗과 사울 진영의 두 장군들이 누가 더 잘났냐는 싸움놀이를 하다가 수많은 신복들을 잃은 것입니다. 아사헬은 아브넬을 쫓다가 허무하게 죽습니다. 이 싸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는 이러한 무사들로 인해 세워지는 나라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자질로는 이렇게 멸망과 파멸로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줍니다. 힘자랑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신이 더 낫다는 생각이 바로 내가 더 힘이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바로 이렇게 서로를 죽이며 세상적 자랑을 일삼는 것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30절에 보면 요압쪽은 20명, 아브넬쪽은 360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결과는 이런 허무한 싸움을 하고 밤새 걸어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 것밖에 없습니다.
물론 3:1절에 보고하는 대로 사울의 쇠락과 다윗의 번영을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인간의 허무함 속에 하나님의 일하심만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좇고 의지하며 인간의 가치를 버리도록 하십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나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에 항복하는 자들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자들입니다. 오직 은혜와 진리로 만들어지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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