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2장

2021년 1월 28일

사무엘하 22장



[말씀읽기]

1 <승전가;시18편> 주께서 다윗을, 그의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셨을 때에, 다윗이 이 노래로 주께 아뢰었다.

2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

3 나의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주께서는 언제나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구해 주십니다.

4 나의 찬양을 받으실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

5 죽음의 물결이 나를 에워싸고, 파멸의 파도가 나를 덮쳤으며,


6 스올의 줄이 나를 동여 묶고, 죽음의 덫이 나를 낚았다.

7 내가 고통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고,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그의 성전에서 나의 간구를 들으셨다. 주께 부르짖은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귀에 다다랐다.

8 주께서 크게 노하시니, 땅이 꿈틀거리고, 흔들리며, 하늘을 받친 산의 뿌리가 떨면서 뒤틀렸다.

9 그의 코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그의 입에서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을 뿜어 내시니, 그에게서 숯 덩이들이 불꽃을 튕기면서 달아올랐다.

10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실 때에, 그 발 아래에는 짙은 구름이 깔려 있었다.


11 주께서 그룹을 타고 날아오셨다. 바람 날개를 타고 오셨다.

12 어둠으로 그 주위를 둘러서 장막을 만드시고, 빗방울 머금은 먹구름과 짙은 구름으로 둘러서 장막을 만드셨다.

13 주 앞에서는 광채가 빛나고 그 빛난 광채 속에서 이글거리는 숯 덩이들이 쏟아졌다.

14 주께서 하늘로부터 천둥소리를 내시며, 가장 높으신 분께서 그 목소리를 높이셨다.

15 주께서 화살을 쏘아서 원수들을 흩으시고, 번개를 번쩍이셔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셨다.


16 주께서 꾸짖으실 때에, 바다의 밑바닥이 모조리 드러나고, 주께서 진노하셔서 콧김을 내뿜으실 때에, 땅의 기초도 모두 드러났다.

17 주께서 높은 곳에서 손을 내밀어, 나를 움켜 잡아 주시고, 깊은 물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18 주께서 원수들에게서, 나보다 더 강한 원수들에게서, 나를 살려 주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살려 주셨다.

19 내가 재난을 당할 때에, 원수들이 나에게 덤벼들었으나, 주께서는 오히려 내가 의지할 분이 되어 주셨다.

20 이렇게, 나를 좋아하시는 분이시기에, 나를 넓고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나오셔서, 나를 살려 주셨다.


21 내가 의롭게 산다고 하여, 주께서 나에게 상을 내려 주시고, 나의 손이 깨끗하다고 하여, 주께서 나에게 보상해 주셨다.

22 진실로 나는, 주께서 가라고 하시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무슨 악한 일을 하여서, 나의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도 아니하였다.

23 주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지켰으며, 주의 모든 법규를 내가 버리지 아니하였다.

24 그 앞에서 나는 흠 없이 살면서 죄 짓는 일이 없도록 나 스스로를 지켰다.

25 그러므로 주께서는 내가 의롭게 산다고 하여, 나에게 상을 주시며, 주의 눈 앞에서 깨끗하게 보인다고 하여 나에게 상을 주셨다.


26 주님, 주께서는 신실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신실하심으로 대하시고, 흠 없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흠 없으심을 보이시며,

27 깨끗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간교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교묘하심을 보이십니다.

28 주께서는 불쌍한 백성은 구하여 주시고, 교만한 사람은 낮추십니다.

29 아, 주님, 진실로 주님은 나의 등불이십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십니다.

30 참으로, 주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도와주시면, 나는 날쌔게 내달려서, 적군도 뒤쫓을 수 있으며, 높은 성벽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31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완전하며, 주께서 하시는 말씀은 신실하다. 주께로 피하여 오는 사람에게 방패가 되어 주신다.

32 주님 밖에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의 하나님 밖에, 그 어느 누가 구원의 반석인가 ?

33 하나님께서 나의 견고한 요새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걷는 길을 안전하게 하여 주신다.

34 하나님께서는 나의 발을 암사슴의 발처럼 튼튼하게 만드시고, 나를 높은 곳에 안전하게 세워 주신다.

35 하나님께서 나에게 전투 훈련을 시키시니, 나의 팔이 놋쇠로 된 강한 활을 당긴다.


36 주님, 주께서 구원의 방패로 나를 막아 주시며, 주께서 안전하게 지켜 주셔서, 나의 담력을 키워 주셨습니다.

37 내가 발걸음을 당당하게 내딛도록 주께서 힘을 주시고, 발목이 떨려서 잘못 디디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38 나는 원수들을 뒤쫓아가서 다 죽였으며, 그들을 전멸시키기까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39 그들이 나의 발 아래에 쓰러져서 아주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들을 내가 무찔렀습니다.

40 주께서 나에게 싸우러 나갈 용기를 복돋우어 주시고, 나를 치려고 일어선 자들을 나의 발 아래에서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41 주께서는 나의 원수들을 내 앞에서 도망가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42 그들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고, 주님께 부르짖었지만 끝내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43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산산이 부수어서, 땅의 먼지처럼 날려 보내고, 길바닥의 진흙처럼 짓밟아서 흩었습니다.

44 주께서는 반역하는 백성에게서 나를 구하여 주시고, 나를 지켜 주셔서 뭇 민족을 다스리게 하시니, 내가 모르는 백성들까지 나를 섬깁니다.

45 이방 사람이 나에게 와서 굽실거리고, 나에 대한 소문만 듣고서도 모두가 나에게 복종합니다.


46 이방 사람이 사기를 잃고, 그들의 요새에서 떨면서 나옵니다.

47 주님은 살아 계신다. 나의 반석이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나의 구언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여라.

48 하나님께서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시고, 뭇 백성을 나의 발 아래에 굴복시켜 주셨습니다.

49 원수들에게서 나를 구하여 주셨습니다. 나를 치려고 일어서는 자들보다 나를 더욱 높이셔서, 포악한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셨습니다.

50 그러므로 주님, 뭇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주께 감사를 드리며,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51 주님은 손수 세우신 왕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손수 기름을 부어 세우신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영원무궁 하도록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말씀묵상]

1절을 보면 이 시는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지은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배경으로 보아 순서상으로 7:1절에서처럼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고 왕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쓰인 시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학자들이 시의 여러 내용을 볼 때 나단을 통하여 다윗 언약을 선포하신 후에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데 역사가는 이 시를 마치 다윗의 말년에 지은 시인 것처럼,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와 반대 세력을 정리한 후에 지은 것처럼 22장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승승장구할 때의 하나님과 지금 말년에 고백하는 하나님이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윗의 상태는 180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미 본 것처럼 골리앗을 물리치고 좀 고생을 했지만 사울이 죽고 남북 통합왕이 되고 여호와의 궤까지 궁으로 가져온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대단해 보인 나머지 하나님의 궤가 초라하게 있는 것이 안쓰럽게 보여 성전을 거대하게 지을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밧세바 사건 이후에 비록 왕으로 있기는 하지만 참으로 처참한 삶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 인도하심, 약속을 이루심, 이스라엘을 다스림 등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22장의 시를 통하여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굳이 밧세바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는가, 가문에 추한 모습들이 있어야 하는가, 왕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스림만 나타나게 할 수는 없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앞의 승승장구할 때의 상황으로 계속 이끄실 수는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답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뒷부분의 상태를 경험하도록 하시기 위해 승승장구하도록 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떤 의미인지를 더 깊고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2장의 전반적인 주제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그분만이 하나님이시고 인도자이시며 나를 지키시고 만드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들이 승승장구할 때 가능한 내용이지, 반역으로 쫓겨 다니고 왕으로서 수치심을 경험하며 왕궁으로 왔지만 여전히 측근들에 의해 불안한 형국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고백할 수 있는 내용일까요? 당연히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후반기가 보여 주고 있는 강조점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라는 세상 속에 있는 어떤 한 나라의 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자입니다. 7장에서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약속은 다윗을 위로하는 약속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이루실 나라, 통치자, 구원자가 누구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과정은 다윗이라는 왕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다윗의 후반기 삶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존재가치가 없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이 망하도록 하셨을까요?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만드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의 힘과 권력과 자본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증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신 것일까요? 그 나라를 애굽, 바벨론, 로마, 미국보다 강력하게 만드실 수 없으셨나요? 세상의 기준이 허물어지고 가치를 잃을 때 하늘의 기준과 하나님의 뜻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다윗에게 밧세바 사건이 없었다면, 요셉에게 노예로 팔림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에게 애굽의 종살이가 없었다면,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 생활이 없었다면 놀랍게도 하나님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골리앗을 이긴 것으로 살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흔적을 갖도록 하십니다. 무가치함의 흔적, 불가능함의 증거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신자는 망한 자들임을 기억하시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자되심을 고백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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