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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3장

2018년 6월 6일

스바냐 3장



*말씀읽기

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2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3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4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5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6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9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묵상

3장에서 나오는 성읍은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이 예루살렘의 죄악은 이미 1장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3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직업별로 지적합니다. 방백(귀족)들, 재판장들, 선지자들, 그리고 제사장들에 이르기까지 정말 공의와 경외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과 기준에 사로잡혀 세상을 좇았음을 보여 줍니다. 5절에 이렇게 지적합니다. 아침마다 여호와께서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과 욕심에 따라 살면서 여호와 앞에 나아가고 있으니 수치를 알지 못하는 뻔뻔함으로 사명을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지금 신자들의 상황은 예루살렘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성전, 율법, 제사, 선지자, 제사장, 말씀선포 등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공의를 비추시는 상황이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2:15절에서 앗수르가 가졌던 것처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것처럼 자기의와 욕심과 자만에 차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 말씀일 뿐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진멸되어야 할 자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럴 때마다 은혜가 아니면 어찌할 수 없다는 고백 역시 하게 됩니다. 죄인은 죄인일 수밖에 없으며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진멸되어야 할 상황에서 본문 9절을 보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선포됩니다. 돌아섬이나 회개함도 없이 주어진 구원의 소식입니다.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불가능과 진멸의 대상에게 회복과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부름을 받은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흩어졌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범죄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어떤 자였는지,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보았고 그 결과 포로로 끌려갔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10-11절). 12절에서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남은 자, 하나님께서 남긴 자들이며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바로 그 분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을 말하며 그 분의 뜻은 바로 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탁하다는 피하다 의지하다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한다는 말은 언약을 의지한다, 언약 아래로 피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합니다. 이 구원을 얻은 자들의 기쁨의 노래가 우리가 잘 아는 17절입니다. 찬양으로 부르다 보니 이 가사에만 관심을 갖기 일쑤입니다. 이 고백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말입니다. 진멸의 대상이었지만 무조건적 구원이 이루어졌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합3:17절의 고백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습니다. 둘 다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박국은 자신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초월하여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스바냐는 진멸할 자를 친히 구별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고백입니다. 진멸받아 마땅한 자신을 깨달은 자로서, 지금의 상황이 마땅치 않고 불합리한 것 같고 세상에서 소외되고 세상의 가치와 목표에서 멀어져야 할 자임을 확인한 자로서, 정말 구원의 하나님만이 기쁨의 근원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까? 19절에 하나님께서 모으셔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실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저는 자, 쫓겨난 자,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를 모으시고 천하 만민 가운데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이 명성과 칭찬이 아닌 세상에서의 명성과 칭찬을 추구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신자의 삶의 목적과 근거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기쁨과 감사가 삶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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