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주님, 어찌하여 주께서는 그리도 멀리 계십니까? 어찌하여 주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숨어 계십니까?
2 악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핍박합니다. 악한 사람은 자기가 쳐 놓은 올가미에 자기가 걸려 들게 해주십시오.
3 악한 자는 자기 욕망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는 자는 주님을 모독하고 멸시합니다.
4 악인은 그 얼굴도 뻔뻔스럽게 벌주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합니다. 그들의 생각이란 모두 이러합니다.
5 그런데도 악인이 하는 일은 언제나 잘 되고, 주의 심판은 너무 멀어서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니, 악인은 오히려 반대자를 보고 코웃음만 칩니다.
6 그들은 마음 속으로 내가 망하는가, 두고봐라. 나에게는 불행이란 없다 하고 말합니다.
7 그들의 입은 저주와 기만과 폭언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혀 밑에는 욕설과 악담이 가득합니다.
8 그들은 으슥한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은밀한 곳에서 순진한 사람을 쳐죽입니다. 그들의 두 눈은 언제나 가련한 사람을 노립니다.
9 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자처럼, 은밀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때만 만나면 연약한 사람을 그물로 덮쳐서 끌어갑니다.
10 불쌍한 사람이 억눌림을 당하고, 가련한 사람이 폭력에 쓰러집니다.
11 악인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얼굴도 돌렸으니, 영원히 보지 않으실 것이다 합니다.
12 주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 손을 들어 악인을 벌하여 주십시오. 고난받는 사람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경멸하고, 마음 속으로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 하고 말하게 내버려 두십니까?
14 주께서는 학대하는 자의 학대와 학대받는 자의 억울함을 살피시고 손수 갚아 주려 하시니 가련한 사람이 주께 의지합니다. 주께서는 일찍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셨습니다.
15 악하고 못된 자의 팔을 꺽어 주십시오. 그 악함을 벌하여 주십시오. 그 악함을 샅샅이 살펴 주십시오.
16 주님이 영원무궁토록 왕이십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뭇 나라가 주의 땅에서 사라져 갑니다.
17 주님, 주께서는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18 고아와 억눌린 사람을 변호하여 주시고, 다시는 이 땅에 억압하는 자가 없게 하십시오.
[말씀묵상]
10편의 내용은 신자들만이 아닌 불신자들까지도 자주 경험하는 불합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악이 승리하고 선하고 약하고 가련한 자들이 악인들에게 압제를 당하는 일들이 벌어지는가, 왜 이들에 대해 하나님은 그냥 놔두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 시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연약한 자들을 구해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이 여호와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없다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이 더 흥왕하여 갑니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신자들은 특별히 항변한다거나 혹은 하나님께 탄원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우를 보았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잘 알듯이 하박국 선지자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하소연하였습니다. 시인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기준과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일어나는 오해입니다. 나의 생각과 목표에 맞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번성과 성공만이 아니라 재난이나 전쟁, 천재지변이 하나님의 일하심인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악인의 번성이 나의 기준과 시각에서 본 것이지 하나님의 일하심에서는 심판인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자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사는 이상,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평가하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만족과 유익, 성공과 출세가 판단의 기준으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버리지 못한 결과입니다.
시 10편을 통하여 시인이 보여주는 모습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시인은 악인이 약한 자들을 압제하며 괴롭힘에 대해 고발합니다. 이와 함께 악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 모습도 드러냅니다. 여호와를 멸시함, 하나님이 없다함, 교만함, 하나님을 무시함 등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시인이 자신의 유익과 안위를 찾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약한 자에 대한 대변과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판단과 소원을 맡기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일하심과 함께 하심에 항복했던 것처럼 시인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분명한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14절에 주께서 보셨다고 확신합니다. 결코 잠잠해 계신 분이 아님을 확인한 것입니다. 16절에 여호와께서는 영원토록 왕이시라고 선언합니다. 결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그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있고 어느 것 하나 우연한 일이 없음을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다스리심을 믿으십니까? 상황에 따라 좌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합리한 상황이 보이십니까?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고 있는 중입니다. 나에게도 억울한 경우를 경험하십니까? 17절에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겸손은 주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신뢰하며 간구하고 있는 자입니다. 신뢰, 겸손, 감사, 찬양, 믿음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이 고백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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