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9편

2020년 6월17일

시편 109편


*말씀읽기

[시 109]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17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9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20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21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23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24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25 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2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7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8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29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31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말씀묵상

109편은 시인이 자신의 압제당함을 호소하며 원수를 하나님께서 심판해 달라는 탄원과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소원을 아뢰는 내용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저주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도덕적인 인격이나 인간의 기준을 말하는 시가 아니라 진정한 저주가 무엇인지, 참된 복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입니다.

1-5절까지는 시인이 하나님께 탄원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원수들이 무고하게 비방하고 거짓으로 공격함으로 기도할 뿐이라는 시인의 마음을 토로합니다. 나는 사랑했는데 도리어 대적하며 악으로 선을 갚은 것입니다. 시인이 받은 내용을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고한 고난을 기억하게 됩니다. 지금 시인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세상으로부터 예표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시인이 하나님께 저주해 주시기를 말하는 내용은 단순하게 보복심에서 나오는 원한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통하여 자신이 어떠한 자들인지를 깨닫도록 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5절이 그 열쇠입니다.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악인들이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들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6-19절이 악인들의 삶에서 경험되기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혹시 이 내용들 중에 여러분들이 경험한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연수가 짧거나, 직분을 타인이 빼앗거나(8절), 자녀가 고아 되고 아내는 과부가 되는 일(9절), 자녀들의 유리하며 구걸함, 소유를 빼앗김 등은 누구를 막론하고 일어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거들이 저주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저주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세상의 복을 기준으로 사는 자들이고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믿는 자들은 신자들입니다. 내 앞에 여호와께서 계심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결코 저주일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 시인(다윗으로 추정)은 자신의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며 자신의 고난과 아픔, 당하는 어려움보다도 그로 인해 원수들에게 일어날 하나님과 멀어짐이 진짜 저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 이후에 시인이 처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처참한 모습입니다. 악인에게 임하기를 구했던 모습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5절은 십자가를 지시던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모습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하면서 25절에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기를 구합니다. 시인을 구원한 사건이 무엇일까요? 다윗이라면 왕위를 유지한 것일까요?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은 것이 세상이 깜짝 놀라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모습일까요? 26절을 보면 이 구원은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붙잡고 사는 내용이며 이유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6)의 고백만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31절에서도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서 악인들을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승전가를 부르는 승자 오른편이 아니고 궁핍한 자의 오른편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주님은 우리의 편이 되셔서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 편에 서서 함께 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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