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3편

2020년 6월23일

시편 113편



*말씀읽기

[시 113]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말씀묵상

113편도 할렐루야 찬양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 존재, 성품을 나타내 줍니다. 성경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의 이름은 상황마다 계시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럴 때마다 찬양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디서나 누구나 찬양해야 할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은 왜 하지 않느냐며 상대방에게 채근하는 모습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믿는 분, 나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인 것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늘, 항상 시간적으로, 상황적으로 상관없이 찬양해야 합니다.

4절 이후는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이유를 두 가지로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4-6절에서는 높으신 하나님께서 낮아지심에 대해 찬양합니다. 모든 나라보다, 하늘보다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일반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신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신이 됩니다. 이걸 이신론(Deism)이라고 합니다. 절대적 존재가 있는데 멀리 있는 존재, 세상을 창조하고 관심이 없는 신, 인격적이지 않은 존재를 말합니다.

실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삶에 하나님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관심이 없는, 나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신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신을 찾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신자들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교통, 순종, 고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러한 신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5절에 시인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찬양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에 대해 고백할 때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고백과 찬양이 여러분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시인의 경험은 6절에 있는 대로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만나 주셨다는 말입니다. 삶에 개입하셔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다음 구절들이 그 내용입니다.

7-9절까지가 두 번째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로 설명하는데 낮은 자들에게 오셔서 높여주신 것입니다. 7-8절의 내용은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고백을 인용한 것입니다(삼상2:8). 또한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찬가를 기억하게 합니다(눅1:52). 이 시인의 고백은 단순히 억울한 자들에게 기를 펴게 하는 내용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 기를 펴게 하고 괴롭히던 자들을 밟고 일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처럼 표현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궁극적인 승리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찬양(삼상2:1-10)은 자신을 괴롭혔던 브닌나에 대한 원통함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워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찬양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비천함, 죄인됨이 발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베푸신 은혜이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은 나를 만족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 인도하심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내 소원 성취의 수단이 아니라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죄인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삶 속에서 고백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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