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8편

2020년 6월27일

시편 118편



*말씀읽기

[시 118]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10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2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3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말씀묵상

시인은 1절부터 감사하라는 선포와 함께 영원하신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찬양의 이유가 5절에 나오는 것처럼 고통 중에 응답하시고 넓은 곳에 세워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중요한 요점이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심을 경험했는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찬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자신의 구원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서 하나님은 좋으신 분, 인자하신 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장이기에 그것은 우연한 일들이 아니며,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하심임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고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백에는 반드시 내 생각과 나의 만족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깨어지고 부서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은 이러한 내 기준과 만족으로 만들어 가던 자아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자라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경험하는 것을 우선 보이는 것, 육신적인 것으로 보게 됩니다.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나에게 좋으면 감사가 나오고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이 고백하는 것은 고통과 구원을 통하여 나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 것입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 내편이시라는 고백도 나만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의 일하심에 항복한 고백인 것입니다. 그의 하시는 일이 항상 옳으시다는 말입니다. 즉 그가 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두려움이 없고 보호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끊어버린다는 말도 주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 주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신자들의 삶이 힘들다는 말은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가신 길,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가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승리라는 말은 대적을 이겼다는 말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갔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시인은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경책하셨다고 표현합니다(18절). 경책은 훈련하다, 경고하다는 의미입니다. 훈련시키셨지만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습니다. 견디고 이기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신자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이지만 견디고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의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신다고 합니다(19절). 의인들이 들어가는 문입니다(20절). 예수님께서 양들을 부르시고 이끄신 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고난을 당하였지만 놀랍게도 주님이 지키시고 이끄시는 의인들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를 22절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세상에서 드러난 신자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버린 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친히 적용하신 내용입니다(마21:42). 하나님의 행하신 바이며 정하신 바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복과 형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권능의 손에 붙잡힌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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