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13-128

2020년 9월 26일

시119:113-128



[말씀읽기]

113 나는,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미워하지만,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114 주님은 나의 은신처요, 방패이시니, 주께서 하신 약속에 내 희망을 겁니다.

115 악한 일을 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거라.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겠다.


116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를 붙들어 살려 주시고, 내 소망을 무색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117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를 항상 살피겠습니다.

118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다 헛것입니다.

119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꺼기처럼 버리시니, 내가 주의 훈계를 사랑합니다.

120 이 몸은 주님이 두려워서 떨고, 주의 판단이 두려워서 또 떱니다.


121 나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였으니, 억압하는 자들에게 나를 내주지 마십시오.

122 주의 종을 돕겠다고 약속하여 주시고, 오만한 자들이 나를 억압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123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바라다가 피곤해지고, 주의 의로운 말씀을 기다리다가 지쳤습니다.

124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맞아 주시고,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125 나는 주의 종이니, 주의 경고를 알아차릴 수 있는 총명을 주십시오.


126 그들이 주의 법을 짓밟아 버렸으니, 지금은 주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합니다.

128 그러므로 내가 매사에 주의 모든 법도를 어김없이 지키고, 모든 거짓행위를 미워합니다.


[말씀묵상]

본문에서는 시인은 압제하는 악인들을 향하여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선포합니다. 말씀을 의지하며 지킬 것을 다짐하며 자신을 붙잡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과 입장 표명은 신자들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113절에서 말하듯이 두 마음을 품은 모습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사랑하고 섬기려고 하자 엘리야는 분명하게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고 책망했습니다(왕상18:21).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신자들 역시 깊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경고입니다. 시인은 분명하게 행악자들이라고 단정합니다. 야고보서1:8절에서도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지적하면서 4:8절에 성결할 것을 당부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섬기는데 세상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6:24). 두 주인은 하나님과 재물을 말합니다. 세상, 재물, 우상 등 하나님만을 섬기는데 방해하고 멀리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지 늘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붙들어 달라고 계속 간구합니다. 말씀에 대해 늘 찾고 지키며 주의한다고 자신하지만 동시에 주를 두려워하며 주의 심판을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아이러니 같은 모습이지만 당연한, 정상적인 신자의 입장 표명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부담이며 경외심이며 때로는 자신을 붙들어 주는 채찍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주의 말씀에 복종하며 살게 됩니다. 바울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했고(빌2:12), 복음을 전한 것이 도리어 자신이 버림이 될까 두려워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고전9:27). 말씀으로 말미암은 이러한 두려움은 하나님 앞에서 가지게 되는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의 간구 중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 보증을 구한 것입니다. 122절에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보증인이 되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담보물을 주다, 서약하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창43장에 야곱이 요셉에게 아들들을 보낼 때 머뭇거리자 유다가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또는 기업 무를 자가 보증인이 되어 재산, 혹은 신분을 회복시키기도 했습니다. 기업 무를 자는 구속자의 예표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하나님께 요청하는 보증은 자신을 위한 희생, 즉 십자가가 내포된 요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담보가 되셔서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신 사건으로 성취된 내용입니다. 이 은혜를 구한다는 사실은 거의 희망이 없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원수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있거나 채무로 인해 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눈이 빠지도록 사모하고 있습니다(123절).

신자들은 이미 이러한 은혜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상황에서 얻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의 소중함과 긴박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모습을 통하여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나를 보게 하고 그런 자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와 사랑이 삶 속에서 확인되게 하시고 그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경외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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