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33-48

2020년 9월 19일

시편 119:33-48



[말씀읽기]

33 b) 주님,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언제까지든지 그것을 지키겠습니다.

34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내가 주의 법을 살펴보면서, 온 마음을 기울여서 지키겠습니다.


35 나를 지키셔서, 주의 계명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

36 내 마음이 주의 교훈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37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c) 주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게 해주십시오. (c. 두 마소라 사본과 사해 사본에는 주의 말씀을 따라서)

38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맺으신 약속, 주의 종에게 꼭 지켜 주십시오.

39 주의 규례는 선하시니, 그 무서운 비난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40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의 의로 내게 새 생명을 주십시오.


41 d) 주님, 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내게 베풀어 주십시오.

42 그 때에 나는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응수하겠습니다.

43 내가 주의 규례를 간절히 바라니,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44 내가 주의 율법을 늘 지키고, 영원토록 지키겠습니다.

45 내가 주의 율법을 열심히 지키니, 이제부터 이 넓은 세상을 거침없이 다니게 해주십시오.


46 왕들 앞에서 거침없이 주의 교훈을 말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47 주의 계명을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

48 주의 계명을 내가 사랑하기에, 두 손을 들어서 환영하고, 주의 율례를 깊이 묵상합니다.


[말씀묵상]

시인은 기원(~하소서)과 다짐(~하겠습니다)으로 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원에서는 주님께 말씀에 대한 청원을 합니다. 가르치소서, 깨닫게 하소서, 행하게 하소서, 향하게 하소서, 세우소서입니다. 말씀이 자신의 삶에 자리 잡고 말씀에 따른 삶을 살기 위한 청원임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깨달은 자로서의 모습입니다.

신자들이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식을 위함이 아닐 것입니다. 자랑도 아니고 무엇을 얻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세상을 좇지 않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끝까지, 전심으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살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탐욕과 허탄한 것을 버리고 따르지 않기 위한 노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탐욕은 죄의 본질을 보여 주고 있고 허탄한 것은 우상 숭배를 가리킵니다. 중요한 모습입니다. 시인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붙잡은 결과입니다. 38절에서 말씀을 세워달라는 것은 약속하신 것을 지켜달라는 간구입니다. 약속은 세상 속에서 신자가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내가 내 삶을 만들 수 없고 치우칠 수밖에 없는 연약함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내 삶에 들어오셔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고 이끄시는 것이 바로 약속의 성취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자신을 맡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욱 의지해야 할 이유입니다. 시인은 몸서리치는 비방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39절). 이럴 때 사람들은 자신의 옳음과 상식에 근거하여 자존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모습은 역시 말씀에 근거하여 아룁니다. 해결하여 자신의 의를 드러냄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규례, 39절)에 맡깁니다. 회복은 내 삶이 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41절에서도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이 내게 임하길 구합니다. 인자하심이 약속에 근거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구원으로 드러납니다. 내 삶이 전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원수를 이기는 방법이며 내용입니다. 신자이지만 세상에서의 삶을 늘 물리적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보다 뭔가 늘 나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부러워하도록 하는 것이 이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사 그러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신자들은 그것을 이긴 것으로, 나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씀이 내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즐거워하며 읊조리기를 다짐하며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말씀은 율법처럼 지켜 그 결과를 얻어내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다스림, 함께 하심, 붙잡혀 있음에 있지 누군가 보기에 부러워할만한 것을 얻는데 있지 않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있는 바울과 실라는 전혀 부러워할 만한 모습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창26장을 보면 이삭이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은 얻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그곳에서 쫓아냅니다. 이유는 우리보다 강성하다는 것입니다. 강성하면 지배하고 다스려야 하는데 미련하게 이삭은 거길 떠납니다. 무려 일곱 번을 쫓겨다닙니다. 브엘세바(일곱우물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만나 약속해 주십니다. 그에게는 힘도 우물도 의미 없었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시고 즐거워하며 높이고 찬양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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