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97-112

2020년 9월 25

시편 119:97-112



[말씀읽기]

97 a)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합니다. (a. 97-104절은 매 절마다 멤으로 시작 됨)

98 주의 계명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므로, 그 계명으로 주께서는 나를 내 원수들보다 더 지혜롭게 해주십니다.

99 내가 내 스승들보다도 더 명석해졌습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따르므로, 노인들보다도 더 슬기로워졌습니다.

100 내가 주의 법도를 따르므로, 노인들보다도 더 슬기로워졌습니다.


101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나쁜 길에서 내 발길을 돌렸습니다.

102 주께서 나를 기르치셨으므로, 나는 주의 규례에서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103 주의 말씀, 그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

104 주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105 b)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b. 105-112절은 매 절마다 눈으로 시작 됨)


106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려고, 나는 맹세하고 또 다짐합니다.

107 주님, 내가 받는 고난이 너무 심하니,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108 주님, 내가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의 기도를 즐거이 받아 주시고, 주의 규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109 내 생명은 언제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만, 내가 주의 법을 잊지는 않습니다.

110 악인들은 내 앞에다가 올무를 놓지만, 나는 주의 법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111 주의 훈계는 내 마음의 기쁨이요, 그 훈계는 내 영원한 유산입니다.

112 내가 죽는 날까지, 주의 율례를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말씀묵상]

시인은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읊조리는 자가 얻는 놀라운 복에 대해 고백합니다. 이것을 시인은 자신이 주의 법(토라)을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말씀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주의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뭔가 애틋한 마음이 아니라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그분의 속성을 알고 마음에 새기며 그분의 원하심을 깨달아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흔히 신자들의 오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성경이 오늘 할 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 라는 식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는 것도 뭔가를 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소위 직통계시를 받는 식으로 번뜩이는 생각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이 보여주는 것이 신자들이 숙고해야 할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말씀에 반응하는 내용입니다.

시편 1편에서 복이 있는 사람은 늘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나쁜 길을 가지 않게 됩니다. 나쁜 길은 당연히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처럼 삽니다. 이 나무는 특별한 일을 해내지 않습니다. 시냇가에 심어져 있기에 과실이 때때로 열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잘된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함께 하심의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어느 상황에서도 형통했다고 하는데 일이 잘되었다는 표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창39:2, 21, 23).

본문 시인의 표현에서도 자신의 모습이 원수보다, 스승보다, 노인보다 지혜와 명철함이 낫다고 고백합니다. 뭐가 얼마나 나을까요? 보기에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읊조리는 삶의 모습에 대한 표현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고백한 내용이 증거입니다.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한 것입니다. 그는 이것으로 최악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를 형통했다고 성경은 보고합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함, 늘 주의 말씀을 묵상함이 그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105절은 우리가 늘 암송하는 내용입니다. 말씀으로 인도되는 삶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등과 빛이라는 말이 바로 주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이 심하지만, 항상 위기에 있지만, 원수가 올무를 놓았지만 말씀 가운데 있음으로 인해 그의 삶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고난을 당했는지, 위기로 빠져들었는지, 원수의 올무에 걸려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 가운데 있었다고 합니다.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기업이라고 고백합니다(111절). 그리고 이것으로 즐거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말씀이 달고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말씀이 삶 가운데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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