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지휘자를 따라 c)팔현금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주님, 도와주십시오. 신실한 사람도 끊어지고, 진실한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c. 히) 스미닛. 음악 용어)
2 사람들이 서로서로 거짓말을 해대며, 아첨하는 입술로 두 마음을 품고서 말합니다.
3 주님은, 간사한 모든 입술과 큰소리 치는 모든 혀를 끊으실 것이다.
4 비록 그들이 말하기를 "혀는 우리의 힘, 입술은 우리의 d)재산 누가 우리의 주인이랴"하여도 (d. 또는 보습)
5 주님은 말씀하신다. "가련한 사람이 짓밟히고, 가난한 사람이 부르짖으니, 이제 내가 일어나겠다.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겠다."
6 주의 말씀은 흠 없는 말씀, 도가니에서 단련한 은이요, 일곱 번 걸러 낸 금이다.
7 주님, 주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8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비열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습니다.
[말씀묵상]
지금 묵상하고 있는 시들의 저자는 다윗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묵상했지만 다윗의 시로 보기에 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의 힘과 능력만이 아니라 지혜와 지식이 출중했고 주변에 모략가들, 전술가들도 많았으며 게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전쟁에서 늘 승리했습니다(삼하8:6).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무슨 어려움과 고난과 힘듦이 있었다는 말인가, 이렇게 하소연할 만큼의 상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물론 시가 쓰여질 때는 사울왕이나 아들 압살롬, 혹은 그 외 그의 대적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이든지 그가 어려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는데 시를 보면 전혀 그러한 자임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얼마든지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감당해 낼 수 있었을 터인데 도와달라, 저들을 제거해 달라,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때로는 저주의 간구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시인의 모습에 대해 오늘 시편 12편이 그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시도 여호와여 도우소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의인이 사라져가고 악인이 흥왕하여 가는 것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건하고 충실한 자들로 표현됩니다. 반면에 악인은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자들로 표현합니다. 철저한 자기 중심적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자기 중심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시인의 모습이 신자들의 정상적인 모습일까요? 여기에 신자들의 갈등이 있습니다. 머리와 마음은 정상이라고 가지고 있지만 실제 삶의 상황에서 모습은 그렇지 못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연약함은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절이 그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이나 다른 시인들의 모습은 이러한 연약함에 대해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고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의 기준을 바꾸게 하는 계기임을 보여 줍니다. 이 12편 시도 이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기억합니다(5절). 그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그 말씀의 능력을 고백합니다(6절). 상황은 전혀 바뀌지도 않고 여전히 악인이 횡횡함에도 불구하고(8절) 고백하는 내용입니다(7절).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이 바로 상황에 대한 판단입니다. 하나님 중심은 상황이 기준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문제가 있고 어려움과 고난의 삶이 계속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백하며 그의 지키심과 보존하심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은 상황이 절대적 기준입니다. 지금 문제가 해결되느냐, 어려움이 극복되느냐, 악인이 물러가거나 망하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 상황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함께 하심의 상황입니까? 아니면 이겨내고 극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별 차이가 없는 표현 같지만 결과를 중시하는 자기 중심적 기준, 혹은 자기 만족을 가지고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상황을 뛰어 넘는 고백과 믿음으로 오늘도 승리를 맛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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