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1편

10월 7 업데이트됨

2020년 10월 3일

시편 121편



[말씀읽기]

1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

2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3 주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4 보아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5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6 낮의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7 주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

8 주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말씀묵상]

본 시편은 신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시 중의 하나입니다. 찬양의 가사로도 자주 사용된 시입니다. 이렇게 신자들에게 잘 알려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그 내용이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구구절절 나의 바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목적이 그렇듯이 내가 좋아서, 나에게 마음이 들어서 보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요절이라고 해서 중요한 구절을 강조하거나 암기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물론 죄인인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우심이 나를 만족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지금 일어나는 단순한 문제나 어려움에 대한 도우심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의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돌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하며 시를 시작합니다. 이 모습은 당연히 지금 어떻게 살까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산은 흔한 산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신 곳, 시온산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하나님의 계신 곳을 바라보면서 이미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 붙잡혀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에 그 대답을 분명하게 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신자들의 기본적인 고백이면서 절대적인 고백이어야 합니다. 나의 도움은 그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십니까? 이 해답이 있기에 신자들의 삶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신자들이 삶 속에서 걱정과 근심, 불안이 있는 것은 이 고백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인 고백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도움에 대해서도 육신적인 문제에 대한 매여 있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먹고 사는 것에 매여 있게 될 경우 이방인과 다르지 않은 삶이 됩니다.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3절 이후에 너를 지키시는 자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행위를 지킨다는 동사로 표현한 것입니다. 지키다는 세심하게 돌보다 혹은 보호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며 인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키심의 모습으로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늘 깨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러한 단어 선택의 배경이 있습니다. 보통 잠자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재나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근동 아시아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보면 신들의 잠은 안식, 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쉼은 창조주로서 가지는 특별한 사역입니다. 주님은 창조주로서 쉼을 누릴 수 있는 분이지만 그의 백성들의 위태로움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지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광야 40년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늘이 되시고 모든 환란에서 보호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모든 그의 백성들에게 지금부터 영원까지 베푸실 것임을 시인은 선언하며 마칩니다. 영원히 주님의 함께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내용입니다. 지금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오늘도 모든 상황에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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