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말씀묵상]
본 시는 파멸의 상황에 처했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구원을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반복되는 고백의 내용이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내 편이셨다는 사실을 찬양합니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라는 질문을 던지며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셨기에 개인적인 상황과 국가적인 상황에서 큰 위협과 위험을 넘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신자들에게 이러한 고백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또 실제 하나님께서 내 편이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만족할 때만 좀 그런 것 같을 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내 편이신지 아니면 다른 사람 편이신지, 모두의 편이신지 혼돈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두가 다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며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유익과 나의 안위만을 생각하기에 내 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하나님은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차원에서는 모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제외되는 존재가 아무도 없습니다.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똑같이 일반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고백은 어떤 의미입니까? 시인이 경험한 대적들의 공격은 거의 살아 남을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불길처럼 타올랐고 홍수처럼 휩쓸고 삼킬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이에 씹힐 먹이처럼 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남 같이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이 시에서 나타난 대적의 공격이 어떤 사건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1절에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5천년 역사 속에서 약 1천번의 외세 침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역사 속에서 건재하게 존재하는 것을 보면 시인의 고백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 세우시고 외세의 수많은 공격 속에서 지키시고 이끄셨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지도해 오신 것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애굽, 가나안, 바벨론 포로와 해방 등 이스라엘은 그 명맥이 간신히 이어져 왔음을 역사적으로도 확인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백성 삼으셨음을 보기에 시인은 모든 과정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 편이셨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적의 모습은 어떤 한 가지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계속되었던 하나님 백성을 향한 사탄의 공격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공격은 예수님 때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은 사건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공격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형벌이 아닌 하나님의 완전하신 승리를 보여 주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이제 현재를 사는 신자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고백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내편이십니까? 형편이 별로인데요? 내 꼴이 말이 아닌데요? 그러한 것과 관계없이 십자가의 승리가 내 것으로 확인되는 자들에게는 늘 하나님께서 내 편으로 계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능력이 삶 속에 확인되고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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