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7편

2020년 10월 24일

시편 137편



[말씀읽기]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면서 울었다.

2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3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억압한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4 우리가 어찌 남의 나라 땅에서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도 수금 타는 재주를 잊을 것이다.


6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그 어떤 일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7 주님,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그 날에, 에돔 사람이 하던 말, "헐어 버려라. 헐어 버려라. 그 기초가 드러나도록 헐어 버려라" 하던 그 말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8 망해야 할 바빌론 a)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a. 히) 딸아)

9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말씀묵상]

본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시입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우롱당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잃은 슬픔에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붙잡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충분히 원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우리를 버리셨을까 하는 신앙적인 문제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바벨론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음을 고백합니다. 당시의 생활이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온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던 것들을 생각할 때 운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찬양할 때 쓰던 악기가 마치 죽은 자와 같이 걸려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3절에 나옵니다. 자기들을 사로 잡은 자들이 노래를 청하며 자신들의 흥을 돋우라고 한 것입니다. 이 요청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4절에 고백하듯이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는 자책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반성과 자책은 신자들의 상황 속에서 자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서 세상의 상황에 의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해이해지고 방치되는 점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신자들의 삶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와 방불한 상황 같습니다. 세상이 움직이는 대로 그 장단에 맞추며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세상을 좇음이 아닌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을 견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5-6절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신앙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할 경우 자기 저주를 선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만일 예루살렘을 잊는다면 오른손이 마를지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않거나, 예루살렘보다 다른 것을 더 기뻐한다면 혀가 입천장에 붙을지어다하고 자신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상황에 동화되지 않는 단호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세상을 사는 자들로서 이러한 생각이나 결심을 하며 사는지, 아니면 물 흐르는 대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 세상의 즐거움에 더 나를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신자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거하시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존재로서 항상 위엣 것, 보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7-9절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동조했던 에돔과 멸망시킨 장본인인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선언입니다. 이방과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저지른 일들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될 근거가 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철저하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심판은 즉흥적이거나 인간적인 보복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사13:16). 계시록에서 보여 주는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이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이들을 향한 심판의 참혹함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시인의 마음은 신자들에게 이런 저주의 기도를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참혹한 현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것, 긍휼을 구하는 것만이 살 길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에돔 같고, 바벨론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 때문임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죽으셨지만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에는 심판과 긍휼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벨론과 같이 세상에 둘러 싸여 포로와 같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참된 신자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내 삶에 하나님의 옳으심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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