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9편

2020년 10월 28일

시편 139편



[말씀읽기]

1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7 내가 주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 치겠습니까 ?

8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9 내가 b)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b. 히) 새벽 날개를 가지고)

10 거기에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11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12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13 주께서 내 속 내장을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같은 곳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a) 심오한지요 ?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 (a. 또는 보배로운지요 ?)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19 하나님, 주님은 분명히 악인을 죽이십니다.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20 그들은 주님을 모욕하는 말을 하며, b) 주의 이름을 거슬러 악한 말을 합니다. (b. 또는 주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합니다. 또는 주의 이름을 헛되게 부릅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불확실함)


21 주님,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미워하지 않으며, 주님께 대항하면서 일어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

22 나는 그들을 너무나도 미워합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23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24 내가 c) 고통받을 길을 가고 있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c. 또는 해 받을 길. 현대의 번역들은 악한 길)


[말씀묵상]

139편은 시인의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신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신뢰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과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절의 나를 감찰하셨다는 말은 탐지해서 찾아낸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번역은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다고 해석했습니다. 그 결과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5절의 말씀입니다. 나를 앞뒤에서 두르시고 내게 안수하셨다는 것입니다. 보호하심, 인도하심, 책임지심, 복을 주심, 붙드심 등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놀라운 신앙적 깨달음과 고백이 있었음에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너무 기이하고 높아서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울 역시 롬11:33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도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생길수록 더욱 겸손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7절부터는 하나님의 무소부재, 어디에나 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도 하늘에, 음부에라도 하나님은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새벽에 비치는 빛줄기같이 빠르게 바다 끝에 가도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고 붙드신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편재성, 어디나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을 따르지 않는,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상황을 어떻게 하든지 바꾸려고 합니다. 피하거나 타협하려고 합니다. 쉬운 길, 신앙적이지 않은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가장 먼저 자신을 가렸고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말씀을 따르지 않을 때 생기는 본성적인 행동이 하나님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은 이러한 죄인의 얄팍한 생각을 허물고 그분만 의지하도록 합니다.

시인은 흑암이 나를 두르는 상황에 대해 언급합니다. 고난과 역경과 죄악의 환경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들입니다. 또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되게 하는 상황들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시인 자신의 출생 전부터 역사하셨음을 고백합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보신 바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심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우선 현재 자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도록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로 만들어진 나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예정론에 대해 우리는 구원을 받았느냐 못받았느냐는 문제로 접근합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졌느냐 이런 질문을 하며 그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 있겠느냐는 회의론으로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정론의 목적은 바로 감사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고백입니다. 구원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토론의 대상이지만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감사와 찬양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태로부터, 영원 전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가장 훌륭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의 수가 얼마나 놀라운가 하고 시인은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확신을 주는 사실은 없습니다.

이제 시인은 갑자기 원수를 하나님께 고발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좀 엉뚱한 면인 것 같지만 이 부분이 이 시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부분입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전지성, 편재성들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장 특별한 자로 만드셨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을 하게 된 배경이 바로 시인의 현실이 원수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놀라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해 낸 것입니다.

이제 그는 확신과 당당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어떠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대했는지도 말을 합니다.

이 시인은 참으로 멋있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자신감이 있게 됩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확신에 찬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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