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6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9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말씀묵상]
141편의 저자는 아마도 악한 자들과의 교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여러 죄악된 행실과 언행과 생각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회개의 제사를 드림같이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입술로 하는 말의 범죄를 고백하면서 마음이 기울어 악을 행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먹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악을 도모하는 일에 같이 하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자신의 삶에 악을 향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신앙적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대단한 악행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다윗의 기도처럼 늘 자신의 경향과 모습에 대해 간구함이 필요합니다.
입에 파수꾼을 세워달라는 기도는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생각하며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특히 불의와 선하지 않은 것들은 인간에게 더 영향을 줍니다. 칭찬과 욕 중에서 어떤 것이 삶에 영향을 더 줄까요? 당연히 욕입니다. 칭찬 백 번이 욕 한 번으로 상쇄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당연히 입에 파수꾼을 세워야 할 절체절명의 간구를 시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5절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의인이 나를 때릴지라도 은혜로 여기겠다고 말입니다. 책망하더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나를 세워주고 사랑하며 존중해 주는 것으로 여기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보통은 이러한 권고에 잘 반응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말하며 권고하는 말에 호의로 받고 존경함으로 받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친다는 말은 부수다 두들겨 부수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깎아 내리며 악인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심판을 받아야 할 자로 취급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에 대해서도 악담을 하게 됩니다. 너는 낫냐, 너는 잘되나 보자 하는 것이 흔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자신을 처참하게 취급한 의인을 향하여 비록 그가 재난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더라도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물론 일반적인 성도의 성품이 아닙니다. 당연해야 할 것이라고 하지만 거의 불가능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선한 마음을 갖도록 하사 용서와 용납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죄인인지 깨달아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사무엘하 16장을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사울 집에 속한 자인 시므이가 다윗과 그 따르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이때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겠다고 하자 다윗은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놀라운 모습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저주하는 자로부터 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 환경을 통하여 자신의 죄악을 처절하게 보고 깨닫는 과정이 있었고, 특히 밧세바를 빼앗은 사건으로 그는 환골탈태하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입은 긍휼로 인해 왕궁도 포기할 수 있었고 시므이의 비난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에 대해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만이 모든 상황에서 여유로운 고백을 해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장애와 어려움들, 또는 악인들로부터 오는 온갖 시험들, 공격들에 대해 시인은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통치에 맡기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삶은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을 변화시켜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삶에 주인으로 계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의지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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