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5편
- 주언약교회
- 2024년 7월 15일
- 3분 분량
[말씀읽기]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6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7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9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0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11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12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13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15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말씀묵상]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왕이심을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지만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모든 행하신 일들에 대해 찬양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들이 나를 향한 것들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가 나를 위한 것임을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를 위한 것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 별로 나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계획이 나와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약속의 자손을 만들어 가신 것이 나를 위한 것이고, 모세를 세우심도,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다윗을 세우심도 나를 위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위해 비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놀라운 기사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모든 행사를 행하신 분이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런 감격과 감동으로 시인은 지금 하나님의 영광스런 위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고 찬양함을 날마다 영영히 해내야 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놀라운 행사를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당연히 8절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광대하심이기에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신 분이셔야 한다는 찬양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생각과 행위로 인해 이러한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이 손상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무궁하지 않다면 피조물 중에 어떤 존재도 남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있음이 은혜가 아닌가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는 바울의 고백이 지금 나의 고백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인정해주심으로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충분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대와 긍휼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찬양이 우리의 신앙에서 크게 적용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야 할 찬양이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찬양은 그 내용에 있어서 칭찬입니다.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칭찬이 너무도 없는 삶임을 보게 됩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는 고백해 내야 할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칭찬으로부터 생기는 것임을 시인이 가르쳐 줍니다. 10절에서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겠다는 결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사명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고백, 사실에 대한 적당한 표현들을 선포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선전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님의 업적을 인생들에게 알게 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행하신 일들에 대해 잠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은혜의 고백이고 감사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맛본 자의 모습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긍휼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와 긍휼을 모든 자들에게 베푸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특히 넘어지는 자들과 비굴한 자들(14절)에게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만을 바라며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를 성경은 교만이라고 정죄합니다. 능력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며 경외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왕이시며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시고 자기를 찾는 자에게 만나주시기에 세상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고백이 오늘도 충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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