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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최종 수정일: 2023년 5월 15일



[말씀읽기]


1 <다윗의 노래>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움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a)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a. 또는 아주 캄캄한 골짜기로)

5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겠습니다.



[말씀묵상]


너무도 잘 아는 시입니다. 다윗의 목자되신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고백이 담겨진 시입니다. 물론 이 관계는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시에서는 양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나의 목자라는 고백에서 나라는 존재는 분명 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목자로 말미암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가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배부름, 안전함, 인도함, 보살핌 등이 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은 책임지신다는 모습입니다. 부족함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이 이러한 육적이고 환경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합니다. 이 의미는 좀 해석이 필요합니다. 왜 목자가 이끄는 양의 영혼이 소생시킬 상황으로 되었는가입니다. 어떤 경우가 일어났느냐는 말입니다.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시는데 소생시켜야 할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는 시인이 고백하는 단순한 목자와 양의 관계를 표현하며 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고 고백하는 시인은 당연히 이스라엘에 대한 대표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의 내용은 출애굽 이후 광야를 통과하며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보호와 예비하심을 연상하게 하고 약속을 따라서 이루시는 것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신앙과 연결하여 고백하고 있는 시임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1-2절의 내용은 나에게 늘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부분에서 채워주시고 풍성하게 만족함을 주시는 것으로 인도하신다는 것만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지금 가나안을 앞두고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설명하는 가운데 나온 말입니다. 40년 동안 함께 하셨기에 네게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하였음을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지금 시인은 이러한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상황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가 의도적으로 광야의 삶을 배경으로 고백한 시라는 말입니다.


광야에서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 고백입니까? 푸른 풀밭에 누이셨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나요? 실제 원어로 본다면 풀밭은 성결한 처소(출15:13)와, 쉴 만한 물가는 쉴 곳, 평온(민10:33)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고백하는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물질적, 상황적, 세상적인 만족이 아니라 늘 동행하셔서 언약을 성취하신 사실을 두고 고백하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에 대한 설명이 바로 3-4절입니다.


시106: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분명 출애굽의 목적은 주의 이름을 만방에 드러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구절 구절 출애굽의 내용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함께 하심, 보호하심으로 주어지는 복을 고백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고백은 그에게 있었던 상황들이 하나님의 예비와 보호였음을 찬양하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이스라엘을 내내 이끌었던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늘 그러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과 찬양은 역시 우리에게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누군가의 고백으로 끝나는 시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분명하게 확인되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호와의 집에서 그의 거처가 된 내 안에서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고 삶의 근거임을 찬양하며 사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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