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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주언약교회

시편 26편



[말씀읽기]


1 <다윗의 시> 주님, 나의 무죄를 밝혀 주십시오.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2 주님, 나를 달아 보시고, 시험하여 부십시오. 나의 속 깊은 곳과 마음을 단련하여 보십시오.

3 주의 한결같은 사랑을 늘 바라보면서 주의 진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4 헛된 것을 좋아하는 자들과 한자리에 앉지 않고, 음흉한 자들과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5 악인들의 모임에는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악인들과 한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6 주님, 내가 무죄함으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을 두루 돌면서,

7 감사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며, 주께서 나에게 해주신 놀라운 일들을 모두 다 전하겠습니다.

8 주님, 주께서 사시는 집을 내가 사랑합니다. 주의 영광이 머무르는 그 곳을 내가 사랑합니다.

9 나의 이 목숨을 죄인의 목숨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이 생명을 살인자들의 생명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10 그들은 왼손에 음란한 우상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뇌물을 쥐고 있습니다.


11 그러나 나는 깨끗하게 살려고 하오니, 이 몸을 구하여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12 주님, 내가 선 자리가 든든하오니, 예배하는 모임에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말씀묵상]


본 시의 내용을 보면 시인의 신앙에 대해 굉장히 교만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전혀 잘못이 없는 완전한 모습을 가진,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는 정직한 자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러한 온전함을 근거로 간구하며 찬양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정말 시인은 자신의 완전함에 대해 자신하며 실제 그러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흔히 신자들이 갖는 신분이나 자격은 두 가지 양상을 띱니다. 죄인과 의인입니다. 반대되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신자들에게 있는 실제 모습입니다. 구원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죄인일 뿐입니다. 반면에 신자에게 주어진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지만 의인으로 여겨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신분과 모습은 신자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늘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죄인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늘 십자가를 붙들고 겸손하게 사는 근거가 되고, 의인이라는 사실로 인하여는 자격없고 죄악 속에 있었던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26편에 서술되는 시인의 주장에 대한 근거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완전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에 근거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의 완전함은 잘남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인된 자, 주의 인도함을 받는 자로서 주의 뜻이 성취된 자, 주만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자라는 사실을 따라 고백한 내용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획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자라면 시인의 고백과 간구가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 나의 삶에 주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인도되었음을 믿습니다, 상황에 관계없이 나에게 일어난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온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내용입니다. 누구한테 드러내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생긴 모습니다.


시인은 지금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이 경험하는 억울함과 무고함에 대해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큰 어려움을 당하는 신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의 간구를 보면 억울함으로 외치기는 하는데 그 근거가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시인의 주장과 호소의 내용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호소하는 근거가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나와 세상이 기준인 것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알아주심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 달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죄인도 의인도 아닌 하나님을 등에 업은 십자군과 같은, 자기 목적을 성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말입니다.


신자들이 소유한 모습이나 내용은 잘남이나 자랑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다고 그것으로 만천하에 드러내며 믿는 자는 이렇다고 말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의 바람을 보면 세상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을 고백하면서(4-5절), 주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6-8절), 나를 속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 간구하고 있고(11절), 여호와를 송축하겠다는 고백으로 마무리합니다. 뭔가 드러난 것도 없고 그것을 바라지도 않고 게다가 자신의 억울함이나 무고함을 풀어달라는 것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뢰었고 그분만이 나를 붙잡고 계심을 확인하면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사는 상황에 매여 하나님의 일하심과 인도하심을 잊지 않고 주의 은혜와 인자하심이 늘 따르고 있음을 고백하며 경험하는 하루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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