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1편

2018년 8월 17일 업데이트됨

2018년 8월 16일

시편 31편



*말씀읽기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8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묵상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를 의지하며 의뢰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에는 단순히 나를 맡긴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뜻과 계획으로 이끄심에 대한 순종과 나아가 그것만이 나의 삶의 목적이며 기쁨임을 포함하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뢰가 내가 경험하는 삶에서 요구과 만족으로 흐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이기에 항상 남들보다는 뭔가 달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름이 하나님 기준이 아닌 세상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습이 남과 어떻게 다릅니까? 그 다른 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까? 세상의 기준입니까? 무엇을 원하고 추구하고 있습니까? 오늘 시편의 저자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간절하게 하나님께 아뢰며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탄원시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듯이 나를 구원해 주시는 것과 함께 자신을 괴롭히는 대적에 대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사뭇 다릅니다. 단순한 괴로움을 벗어나거나 그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요구를 하고 있지만 나의 자존심을 위함이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라고 하면서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기 위하여 간구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세워달라고 하는데 세상의 기준을 따름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신뢰함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부끄러움은 어떤 것들입니까? 거의 다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배우는 것도, 열심히 사는 것도, 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부끄러움은 이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저자인 다윗은 그러한 것들을 다 가졌기에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멀어진 삶이었음을 보여 줍니다(9-12절). 자신이 죽은 자와 깨진 그릇처럼 잊어버린바 된 자 같다는 고백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반석이시고 산성이시기에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자신을 인도하시고 지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7절을 보면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가 나를 아신다는 사실 하나로 이 모든 고난을 견디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상황이 어떤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든 것을 아시기에 기뻐한다고 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고백입니다. 모든 걸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시인의 상황은 원수들로 인하여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주님만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합니다(14절). 여러분들은 주님을 의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언가를 얻기 위함입니까, 혹은 어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함인가요, 또는 부끄러움을 벗어나기 위함인가요? 어떠한 이유가 되던지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를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 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아시는 주님께 맡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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