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지휘자를 따라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나의 옳음을 변호해 주시는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에, 주께서 나를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 백성들아, 언제까지 c)내 영광을 욕되게 하려느냐? 언제까지 헛된 일을 좋아하려느냐 ? 언제까지 거짓된 것을 따라가려느냐? (셀라) (c. 또는 영광의 하나님을)
3 주께서는 주께 헌신하는 사람을 각별히 돌보심을 기억하여라. 주께서는, 내가 부르짖을 때에 들어 주신다.
4 두려워 떨어라. 죄를 짓지 말아라. 잠자리에 누워 깊이깊이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려라. (셀라)
5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주를 의지하여라.
6 수많은 사람이 기도할 때마다 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 주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하고 빕니다.
7 그러나 주께서 나에게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묵상]
4편도 앞의 3편과 같이 악인을 향한 마음이 표출되어 하나님께 하소연 하는 일종의 애가, 혹은 탄원시로 봅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원수들이 공격하고 비난함으로 인해 생기는 아픔을 인하여 하나님께 고발하고 탄원합니다. 당연히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습니다.
1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신뢰하는 하나님에 대해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신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의로우심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의는 옳음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옳으심은 언약의 신실하심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약속하시고 그것을 신실하게 이루어 내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신뢰하도록 하십니다. 시인도 이러한 하나님에 대해 자신의 상황을 아뢰는 것입니다.
2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공격하는 자들에 대해 고발합니다. 인생들이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자들로 보입니다. 오직 자신의 유익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시인의 신앙과 삶을 괴롭히며 신뢰를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모습이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상황 속에서 어떤 아픔과 괴로움이 있습니까? 여러 방면에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입니까, 아니면 나의 기준과 가치와 유익에 관계된 것입니까? 대부분은 후자의 경우일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불만족한 내용들이 거의 다입니다. 계획한 일이 잘 안 되고, 생각하는 대로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때로는 나의 환경에 자유를 빼앗고 힘들게 하는 것으로 인해 화를 내고 관계를 끊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렇다면 시인이 고발하고 있는 인생들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괴롭히는 장본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라 하더라도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기준이 늘 자기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기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충언합니다. 3-5절을 보면 여호와께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만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는 분명합니다. 주님만 의지하는 자에게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에 대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임을 확신하며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원수들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잠잠하고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권고합니다. 의의 제사는 앞서 의의 하나님이 의미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옳으심, 약속에 신실하심에 의지하여 제사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헛된 일과 거짓이었지만 그것을 벗고 주만을 의지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마땅한 신자의 모습이며 자세이지만 어찌도 이리 힘든지요? 온갖 근심 걱정이 약속의 하나님, 구원의 주님, 신실하심을 무너뜨립니다. 주를 의지함이 삶 속에서 능력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쉽게 세상을 의지하고 맙니다. 이러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주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주께 은혜를 구합니다. 얼굴을 들어 비춰 달라고 합니다. 기쁨과 평안이 거기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인의 기도는 당연히 응답을 받게 됩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짐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기쁨이 원수들의 풍성한 추수에 의한 것보다 크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기쁨이 신자가 소유한 진정한 기쁨이며 평안입니다. 오늘도 주님 주시는 평안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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