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9편

2019년 7월 23일

시편 49편



*말씀읽기

1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말씀묵상

본 시는 시인의 여러 상황들을 통하여 누가 미련한 짐승인가에 대한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부자인 자들이 얼마나 무방비 상태인가를 고발합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죽음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말합니다. 결국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영원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알게 되었고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고, 그로 말미암은 결과까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보통 인생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변하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재물에 대해 기준이 달라졌고 죽음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갖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인이 자신의 지혜를 말하겠다고 하는 것도 부자들에게(6절) 죽음에 대한 것(11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깨닫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한 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강점이 이러한 것들입니다. 비록 상황들은 그다지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생각과 기준과 판단에 있어서 이러한 세상의 가치들에 대해 담대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4:11-13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빈부에 상관없이 자족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이야말로 신자들에게 기쁨과 감사의 근거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자의 능력인 것입니다. 재물의 유무만이 아니라 어떠한 환난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인도 5절에서 죄악이 따라다니고 환난이 에워싸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을 보며 상대적인 만족이나 위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자들 같은 세상 사람들이 가진 기준들은 모두가 다 상대적이며 일시적인 것들이기에 절대적인 가치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임을 보여 줍니다. 구원, 속전, 생명, 죽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를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3절 이후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자들의 결국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들의 잘됨과 칭찬받음에 대해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15절에서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영접하실 것이며 그래서 자신의 영혼은 스올의 권세에서 구원받을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에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역사임을 보여줍니다.

영접하다는 취하다는 의미입니다. 건져내다는 구속하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앞서 부자들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자신에게 있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격과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취하시고 속량하심으로 자신이 이들과 다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자리이며 자랑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오늘도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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