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말씀묵상]
본 시는 개인적인 시가 아닌 공동체적인 시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세상에 드러나고 하나님을 찬송케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축복하던 아론의 축복기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고 얼굴을 비춰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론의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사는 존재임을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목적하신 것이 바로 2절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와 복을 베풀고 얼굴을 비춰 주시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을 깨닫고 온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존재 의미를 가지고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주어질 때 이웃을 보며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구원이 선포되는 도구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3절과 5절이 반복되는데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민족이 주를 찬송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것도 우리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자신과 공동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는지,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 불확실하다면 시인의 간구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현대의 신자들에게 많이 부족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상황적인 삶의 고난들로 인해 은혜와 복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당연히 기준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그의 얼굴 빛을 비추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임재, 함께 하심입니다. 본문에서는 간략하게 나왔지만 민수기에 나오는 아론의 축복을 보면 모두가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4-26).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은 복의 내용들입니다. 나의 환경이나 처지를 가지고 말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물론 말로만 쉬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그의 하신 일에 대해, 그것으로 목적하시는 일에 대해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단순한 현상에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우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우주를 움직이신다는 말입니다. 어느 것 하나 따로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을 인간은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뭔가 가시적인 증거를 보이신 것입니다. 물론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하나님의 복 주심의 증거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모든 만방의 민족들에게 역시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미신적인 복이 아닌, 우상 숭배적인 결과가 아닌,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복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리라는 결단으로 마무리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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