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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편



[말씀읽기]


1 <지휘자를 따라 a)깃딧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 저 하늘 높이까지 주의 위엄 가득합니다. (a. 음악 용어)

2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꺽으시고, 주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3 주께서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주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봅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

5 주께서는 사람을 b)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와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b. 또는 천사보다)


6 주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8 하늘에서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노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말씀묵상]


8편은 많은 신자들에게 익숙한 시입니다. 찬양으로 부르고 성경에서도 많이 인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우선 내용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영광스럽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것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설명합니다. 어린 아이들에 의해 그 영광이 드러나는데 대적들을 향하여 증거자로 있음을 말합니다.


이 설명은 하나님께서 승리자이시며 정복자이시라는 사실을 통하여 그 위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이들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이며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바로 마21장에서 예수님께서 왕으로 입성하실 때 직접 인용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왕으로 입성하신 후 성전을 정화하시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저 아이들의 소리를 듣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고 답을 하십니다.


시편 8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어린아이를 통해서 드러내시고 원수들의 교만을 무너뜨리셨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왕되심에 그대로 적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함에 대해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신앙을 완전하게 부정하시며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영광을 보며 구원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들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함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3절 이하에서는 하늘과 땅의 천체를 보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역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놀라움과 위대함을 보니 이것들을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어마어마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보다도 인간에게 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감사와 황송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신자들의 고백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시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볼 때 인간의 자리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나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보다 훨씬 더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그러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이러한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발견하십니까? 시인의 마음이 다른 엉뚱한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며 깨달은 것입니다.


당연히 물리적인 것들을 통하여 발견한 정도가 아닙니다. 그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끄시는 마음을 본 것입니다.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다고 합니다. 인격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왕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교만과 자랑의 자리를 말함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이끄심에 감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은 대속의 역사를 깨달은 것입니다.


왜 이러한 고백을 하지 못할까요?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찬양이 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깨닫지 못한 결과입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의 하나님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지만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뜨려져야만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인도, 관심, 긍휼을 발견하고 대속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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