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둣에 맞춘 노래]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말씀묵상]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약속을 어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이 말은 멸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민족을 이루시고 약속하신 대로 이루셨지만 이러한 하나님을 좇지 않고 이방 우상을 따르고 버린 결과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심판하심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드러납니다. 왜 멸망함이 끝이 아닙니까? 조건과 상황에 의해 이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났기에 선택하신 것이 아니고 잘하고 있기에 계속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죄인이었고 선택받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도 당연히 다른 자들보다 낫지 않았습니다. 창녀 고멜과 같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근본없는 자들처럼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고 망하게 하시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잘 정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만을 생각하면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건과 상관없이 선택하셨기에 죄를 지어도 절대 버리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죄책감도 없이 세상을 좇는 죄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두 가지 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하심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무슨 이유를 들어 따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원하심과 뜻하심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을 잘 지켜서 하나님 마음에 잘 들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이며 구원을 받은 그의 백성인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79편의 내용과 다른 점은 원수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습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긍휼과 은혜를 간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7, 19절에 같은 내용으로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추사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 목자와 같이 인도하시는 분, 포도나무를 가져다가 가나안에 심으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을 거역하며 멀리했고 불순종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이러한 간구의 근거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입니다. 결코 변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희망이 없는 것 같고 지금 처참한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기에 이렇게 구원을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이루신 내용을 11절까지 서술한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목자로서 이스라엘을 이끄시고 늘 동행하셨던 사실을 고백합니다. 8-11절은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약속을 이루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루셨던 약속의 성취가 시인이 간구할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들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간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런 근거없이 믿는 것을 맹신이라고 합니다. 미신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이런 미신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말씀, 약속이 믿음의 근거입니다. 2천년 전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내신 구원이 믿음의 내용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무엇을 행하셨는가, 그 의미가 무엇인가 등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두렵고 답답한 상황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여전히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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