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6편

2020년 5월29일

시편 96편



*말씀읽기

[시 96]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3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6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7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1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12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13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말씀묵상

96편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파할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 구원, 영광, 이이한 행적들을 만방에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찬양시의 특징은 삶 속에서, 혹은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찬양과 그 능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 시편 역시 노래하며 송축하는 내용이 특별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평상시에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신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결코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남들이 그렇다는 것으로 고백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하게 나와 연관되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이러한 고백들이 기초가 되어서 세상에 드러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대상 16:23-33절에 거의 같은 내용으로 찬양하는 것이 나옵니다. 다윗이 법궤를 옮긴 후에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감사하며 찬양하게 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성소에 안치됨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 인도하심, 다스리심이 이스라엘에 있게 되었음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1절에 새 노래는 항상 새로운 것으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서(시 98:1, 계14:3) 늘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새로운 일을 이루심에 대한 응답을 말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인도하시고 함께 하셔서 새로운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의 삶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고백할 때 이 고백을 강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 하나님의 창조하심입니다(5절). 구원과 창조하심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일하심이 항상 연관되고 함께 있는 것이지만 구원과 창조는 죄인들에게 특별하게 역사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고백하도록 하신 기이한 행적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으로 고백하는데 무리가 없는데 창조는 개인적인 고백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나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지 창조가 인간 창조에 초점이 되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 근거입니다. 그들을 위한 창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조하심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시다는 내용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에게 초점을 맞추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창조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창조하지 않으시면 구원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조하심은 구원하심과 함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지금의 모든 상황들도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만국의 족속들을 부르며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는 명령(8절)도 창조하심과 구원하심에 대한 반응인 것입니다. 당연히 창조하신 분은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심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백은 심판하심입니다(10절). 창조하심, 구원하심, 다스리심, 심판하심은 세상을 통하여 드러내신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고백은 신자들에게 힘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와 평강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11절 이후에 우주 만물이 기뻐하며 즐거이 외치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러한 모습이 모든 신자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내가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무조건적인, 진정한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찬양과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는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고백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무엇이 나를 이끌고 있습니까? 구원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와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삶입니다. 오늘도 은혜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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