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동해보복법
[말씀읽기]
1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기로 한 그 땅, 거기에 살고 있는 원주민을 주 너희의 하나님이 멸망시키시고, 너희가 그들을 쫓아내어, 그 성읍과 집에서 살게 될 때에,
2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차지하라고 주신 땅에서 성읍 셋을 따로 구별하여 놓아야 한다.
3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땅을 세 영역으로 구분하여 길을 닦아, 모든 살인자가 그 곳으로 피신할 수 있게 하여라.
4 살인자가 구별된 성읍으로 도피하여 살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일찍이 미워한 일이 없는 이웃을 뜻하지 않게 죽였거나,
5 어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나무하러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찍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나가 친구를 쳐서, 그가 죽었을 경우에, 죽인 그 사람이 그 구별된 세 성읍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면, 살 수가 있다.
6 도피성은, 평소에 이웃을 미워한 일이 없는 사람이 실수로 이웃을 죽게 하였을 때에 자기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곳이므로, 그 곳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면, 피살자의 친척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따라가서 죽일 터이니, 거리가 너무 멀어서는 안 된다.
7 내가 세 성읍을 따로 떼어 놓으라고 너희에게 명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8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 땅의 경계를 넓혀 주시고 너희의 조상에게 약속한 모든 땅을 너희에게 주실 때에는,
9 또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너희가 성심껏 지키고,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가 가르쳐 주신 길을 잘 따라갈 때에는, 이 세 성읍 말고 또 다른 세 성읍을 구별해야 한다.
10 그리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살인죄를 지고 죽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면 살인죄 때문에 너희가 책임을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11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서, 해치려고 숨었다가 일어나 이웃을 덮쳐, 그 생명에 치명상을 입혀 죽게 하고, 이 여러 성읍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면,
12 그가 살던 성읍의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에서 붙잡아다가, 복수자의 손에 넘겨 주어, 죽이게 하여야 한다.
13 너희는 그런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안에서, 죄 없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만, 너희가 복을 받을 것이다."
14 "너희는, 주 하나님이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한 땅에서, 이미 조상이 그어 놓은 너희 이웃의 경계선을 옮기지 말아라."
15 "어떤 잘못이나 어떤 범죄라도,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판정할 수 없다.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만 그 일을 확정할 수 있다.
16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나쁜 증인이 나타나면,
17 소송을 하는 양쪽은 주 앞에 나아와, 그 당시의 제사장들과 재판관 앞에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18 재판관들은 자세히 조사한 뒤에, 그 증인이 그 이웃에게 거짓 증언을 한 것이 판명되거든,
19 그 증인이 그 이웃을 해치려고 마음 먹었던 대로 그 이웃에게 갚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서 그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20 그러면 남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서, 이런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서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21 너희는 이런 일에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라."
[말씀묵상]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성읍을 지정하도록 하십니다. 도피성입니다. 부지 중에 이웃을 죽였을 경우 보복을 피하여 도망할 수 있도록 지정한 성읍입니다. 앞서 민35장에서 말씀하셨던 것인데 요단 동쪽에 3곳, 서쪽(가나안)에 3곳을 지정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3곳을 추가로 지정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도피성은 무죄한 피흘림을 막기 위함(10절)입니다. 물론 고의적인 살인자는 내어주어 죽이도록 해서 죄를 제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도피성은 이스라엘 내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표현되도록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용서와 사랑의 공동체임을 드러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당연히 교회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된 용서와 사랑을 얻은 자들입니다. 죄인들이 자신을 확인하고 어떠한 은혜가 베풀어졌는지를 깨닫는 자들입니다. 늘 자신이 이 주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5절이하에는 좀 특별한 법이 주어집니다. 위증하는 자들에게 그 의도가 어떠했는지를 보고 그대로 보복하라는 것입니다. 19절대로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악을 제하라는 것입니다. 동해보복법이라고 합니다. 같은 해로 보복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물론 최소한의 보복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보복은 더 가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위의 도피성에서 보여주어야 할 용서와 긍휼과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 사람들의 삶은 여기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보다는 그대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랬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증인들을 세워 죽이곤 했습니다. 거짓 증인을 세워 자신들의 의도를 이룬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 그랬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동해보복법으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건에서 그것은 종결됩니다. 거짓 증인들로 인하여 죽으셨지만 그에 해당하는 보복으로 되돌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해 죽으시게 됩니다. 세상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은 동해 보복법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으로 되돌리게 됩니다. 스데반이 그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랬습니다.
은혜가 지배하는 원리에 사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은혜가 있는 자들임을 기억하시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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