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3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6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7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8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9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10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11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말씀묵상]
3장에서는 신부가 신랑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신랑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 표현된 것입니다. 함께 잠을 자고 있었는데 찾아도 없는 것입니다. 성중을 헤매며 찾아 다닙니다. 순찰하는 자에게 묻고 지나치자마자 사랑하는 자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붙잡고 어머니의 집으로, 자신을 잉태한 이(어머니)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이 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신부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지만 신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때때로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사는 모습입니다. 또는 여러 상황에 의해 믿음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이기도 합니다. 실제 신자들의 삶은 늘 하나님과 떨어져 사는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 있다하더라도 신자들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늘 헤매며 살지 않습니다. 구원자를 찾게 됩니다. 주님께 돌아오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유산을 받아 나간 둘째 아들의 경험입니다(눅15:17-19).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신자들의 마음을 요동시키는 역사인 것입니다. 지금 많은 신자들이 간절함으로 주님을 찾으며 만나고자 하는 모습이 바로 이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을 만나서 어디로 갑니까? 어머니의 집, 자신을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간다고 합니다. 자신의 근원인 곳,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곳을 말합니다. 신부인 술람미는 신자,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의 근원이 어디입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존재의 근원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입니다. 흔히 창세전 언약이라고 하지요(엡1:4). 그러니까 방으로 간다는 말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확인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을 향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6절부터는 솔로몬이 성대한 결혼식을 위해 가마를 보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결혼식의 장면은 어떤 의미일까요? 신자들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를 내며 오고 있는 가마는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찾으러 오시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개선식에 그의 신부인 우리들을 부르시고 동참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마를 옹위하는 용사가 나오는데 이들은 물론 가마를 지키는, 신부를 보호하는 자들로서 끝까지 신부답게 만들어 가는 성령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로 인해 신부는 이 세상에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보호는 아무런 해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신부로 지켜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역시 가마를 만들었는데(9절) 그 재료가 레바논 나무(백향목)라고 합니다. 성전을 의미합니다. 즉 신부를 데려와서 함께 있을 곳이 바로 성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장소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자의 결혼은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것, 지금의 신자들의 현주소이고 종말적으로 재림하셔서 완성될 내용인 것입니다. 아가서는 이 사실을 그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과정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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