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5장

2019년 6월 18일

아가 5장



*말씀읽기

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5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7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8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9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10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


11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15 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생김새는 레바논 같으며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16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말씀묵상

아가서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이해하며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지,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또 교회는 어떠한 사랑을 받았고 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은 솔로몬이 하는 말입니다. 신부와 사랑을 나눈 모습을 그립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솔로몬의 것으로 말합니다. 솔로몬이 준 것만이 그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자의 모습을 말합니다. 전 인생이 주님의 것이며 그로부터 주어진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자들은 늘 뭔가를 소유하고 자신을 만족시킬 것을 찾곤 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신자는 자신을 만족시키는 삶이 아니라 주인이신 주님만을 위한, 그분을 만족시키는 존재인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드러나야 합니다.

2-3절은 신부인 신자들의 나태함을 말해 줍니다. 3장의 내용과 비슷하지만 모습이 완전히 다릅니다. 신랑이 신부를 찾아왔는데 자신이 잠을 자기 위해 누워 있다고 머뭇거리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편의와 무관심으로 인해 신랑의 방문을 외면한 것입니다. 결국 신랑은 문고리에 몰약을 남긴 채 떠나게 되었고 신부는 일어나 그를 만나려 했지만 이미 떠난 후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신자들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나태함이나 게으름같은 모습일수도 있고 또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무관심과 안일함일수도 있습니다. 신자들이 깨어있지 못하고 주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잊고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신자들이 자기 중심의 삶, 인본주의의 기준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인도하심은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근거는 주님이 남기신 몰약(죽음, 십자가의 피)에 있습니다. 십자가야말로 신자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7절을 보면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3장의 경우와는 다르게 이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들은 3장에서처럼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회개케 하심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신부의 안일함과 자기 중심의 모습을 깨뜨리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결국 자아가 부서지고 다시 신랑을 찾게 된 것입니다. 신자들의 삶이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늘 회복해야 할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늘 9절의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 사랑하는 신랑이 더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힘들게 하고 드러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리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부는 신랑의 자랑을 10절부터 나열합니다. 그 표현을 보면 앞서서 신부에 대한 묘사에서 나왔던 내용들입니다. 즉 자신의 모습이 이 신랑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분, 나를 이끌고 가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이 질문의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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