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21일
야고보서 2장
*말씀읽기
[약 2]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묵상
야고보서의 주제라 할 수 있는 믿음과 행함에 대한 단호한 주장이 펼쳐집니다. 믿음이 있다면 행함이 있어야 한다, 행함이 없다면 죽은 믿음이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반론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1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믿음을 가진 자가 가져야할 모습이었습니다. 인내하라, 지혜를 구하라, 의심하지 말라, 경건하라, 고아와 과부를 환난중에 돌아보라,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기를 지켜라 등입니다. 왜 이러한 모습이 드러납니까? 2:1절에서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영광스러움은 어떠한 세상의 기준과 조건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이러한 영광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신자들은 늘 기억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소망 중에 기뻐하며 인내하고 경건에 힘쓰고 세속에 물들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기준이 재물임을 지적합니다. 2장 전체가 이 재물로 말미암은 인간의 연약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라면,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믿고 경험한 자들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보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현재의 삶이 광야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스런 구원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약속된 가나안을 바라보며 가야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단지 기억하는 것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때였습니다. 이 함정에 세상을 사는 신자들도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야고보는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지나가는 광야의 삶입니다. 여기에서 누리는 모든 가치들은 일시적인 것이며 신자들이 추구해야할 것들이 아닙니다. 애굽의 삶에서 가치 있었던 것들입니다. 지금은 그 가치를 빼앗기고 벗어버리고 떨쳐버려야 할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이 영광의 주님을 만나고 우르를 떠납니다(행7:1). 노아는 경험해보지도 않은 배를 만듭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 되기를 버립니다. 기생 라합은 목숨을 건 거짓말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강해 때 설명한 대로 믿음이 그렇게 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이 보여주는 세상 영광을 물리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신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초청하시고 살도록 하신 나라는 세상의 영광으로 만들어지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셨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는 세상 영광을 다 빼앗긴 자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부요하게 된 자입니다.
후반부에 헐벗은 자들에게 쓸 것을 주라는 말은 단순히 도움을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이 수두룩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지적하고 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서의 구제는 세상 영광인 재물과 하늘 영광인 주님 중에 어느 것을 택하며 사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이 무엇을 택했습니까? 세상 영광인 아들, 하나 뿐인 목숨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택한 것입니다. 신자들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8복의 모습이 있는 자들입니다. 오직 영광의 주님만이 자랑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요즘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믿음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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