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장

4월 25 업데이트됨

2020년 4월22일


*말씀읽기

[약 3]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묵상

3장에서는 믿음과 행위에 대한 예로서 말에 대해 얘기합니다. 믿음의 행위로서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이 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그 이유는 말에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선생은 직업적인 사람일수도 있지만 선생 노릇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려고 합니다. 자기 기준과 경험들이 있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들이 다 가르치려는 모습들입니다.

그럼 말을 하지 않으면 될까요? 그래도 그는 자기를 위해, 흠을 잡히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관계에서는 지혜로운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결국 자기 자랑을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말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은 말을 적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바른 말을 하라는 것인데 죄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불가능성을 깨닫게 될 때 자랑이 아닌 은혜를 말하게 됩니다.

따라서 선생은 단순히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온전함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나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혀를 재갈물리고 배와 같이 키로 제어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마음이 할례를 받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혀의 능력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마음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혀를 제어할 수 없다는 말은 마음이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길들일 수가 없고 악과 독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조차 한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저주가 나온다고 야고보는 지적합니다. 이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무화과나무가 포도열매를, 짠 물이 단물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둘을 비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전히 나 중심의 생각과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자가 은혜를 입은 자라는 사실을 깊이 돌아 보라는 말입니다. 야고보는 그런 꼴로 뭘하려느냐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은혜가 필요한 자인지를 보도록 채근하는 것입니다.

결국 야고보는 우리로부터 나오는 행위에 대해 어떠한 근거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확인하도록 합니다.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한 것인지, 아니면 톡한 시기와 다툼으로 행한 것인지를 살피라고 합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했지만 은혜냐, 자랑이냐의 문제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후자는 정욕의 것, 귀신의 것, 시기, 다툼, 혼란, 모든 악한 일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후자의 모습이 자주 보여진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으로 사는 자들인데 다툼, 시기가 있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15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음을 거부하며 핍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수많은 문제와 불화 역시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자들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무엇에 의지하며 사는지 돌아보시고 은혜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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